친구란 그냥 아는 사람과는
다르다. 나만 알고 있는
뭔가가 있다. 그런 특별함이
친구의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로 포틀랜드와 호놀룰루는 내게 친구 도시다.
자주 가는 공원이 있고,
거기엔 내가 좋아하는 특별한 나무 그늘이 있으며, 넓은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나만 알게 된 좋은
자리가 생겼다... 새로 생긴
식당이나 멋진 가게는 관광객이 더 잘 안다.
나만 아는 냉이향이 풍기는 길모퉁이가 있고, 나만 알게 된 바다의 암초가 있으며, 나만 알게 된 파도가 잘 오는 장소가
있다. 그냥 깊어졌을
뿐이다. 친구처럼.
p.149~151
2015년 가을 어느 날, 그림책 작가인 아내 선현경과 이우일은 익숙한 서울의 일상을 잠시 멈추고 미국
오리건 주의 작은 도시 '포틀랜드'로
날아갔다. 세상 모든
여행자들의 로망인 현지인처럼 그곳에서 눌러앉아 직접 살아보기를 실천한 그들의 이야기는 <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이라는 여행 산문집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단순히 몇 주나, 몇 달 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쓴 것이
아니라, 아예 그곳에 이
년이라는 시간 동안 눌러 앉아 살아본 것 일상을 풀어낸 거라서 여타의 여행 에세이들과는 완전히 달랐던 기억이 난다.
2017년
10월,
부부는 포틀랜드를 떠나 또 한 번 낯선 도시 하와이 오하우 섬에 짐을 푼다. 이 책은 하와이에서 파도
타고, 글
쓰고, 파도
타고, 그림
그리며, 일년하고도 십 개월을
여행과 일상의 사이 그 어디쯤에서 만들어졌다.
이 책의 제목인 '하와이하다'는 포르투갈어 '창문하다(janealar)'에서 힌트를 얻어 새롭게 탄생한
말이라고 한다. 창문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생각한다는 의미의 '창문하다'처럼, 하와이를
통해 세상을 만나고 생각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선현경 작가 특유의 솔직하고 깊은 통찰을 담은 145편의 에세이와 이우일 작가만의 촌철살인의
유머를 담은 200여 컷의
일러스트가 만나 652일간의
조금 길고 특별한 하와이 살이가 펼쳐진다!
"지금보다 더 좋아지기를 바란다는 건 욕심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앞으로 내게는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없더라고. 시간이 가면
몸은 더 늙고 힘들어질 거야. 지구 환경도 더 나빠져 바다에 못 들어갈지도 몰라.
그래서 오늘에 더 충실하려고."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건 정신병 초기
증세라고. 다른 미래를
원한다면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부터 다르면 된다.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좋은 오늘을, 함께 살아가겠구나. p.191~192
동화 작가 선현경과 만화가 이우일
부부는 프로 여행러, 혹은
여행 중독자라고 칭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일상을 여행처럼 보내고 있다.
올해가 결혼 이십 주년이 된다는 이 부부는 결혼식도 아무 이벤트 없이 가까운 성당에서 식을
올리고, 긴 신혼여행을
해보자며 편도 티켓으로 유럽행 비행기를 탄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빙자해 마구잡이로 떠돌아 다니다 보니 일 년을 그렇게 여행을 다녔었다고
한다. 포틀랜드에 갈 때도 별
생각 없이 짐을 싸서 갔었고, 온 김에 하와이도 살아보자며 떠돌다 보니 어느 새 한국을 떠나 온 지 사 년이 지나고 있다고 하니 참 유별난 부부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그 무모함과
자유로움과 열정이 질투가 날 만큼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많은 여행을 함께할 수 있는 취향과 사고방식이 맞는 부부라서 부럽고, 일상의 익숙함이 지겨울 때마다 낯선 곳으로 가 그
소중함을 확인하고 돌아올 수 있는 여유와 용기 있는 도전 정신이 멋지게 보였다.
북태평양의 동쪽, 아름다운 남국의 섬 하와이. 청량한 공기, 전세계 서퍼를 유혹하는 에메랄드빛
바다, 마성의
파도, 명랑한
훌라댄스, 소박한
우쿨렐레, 건강한 먹을
거리, 그리고 모두를
반기는 '알로하
스피릿'의 친절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책이다.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화와이의 냄새와 색깔이 물씬 느껴지는 책이기도 하다. 심플한 겉 표지를 벗겨 내면 만나게 되는 속표지가 알달록 하와이안 꽃
무늬인데다, 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예쁜 색채감의 하와이 스케치들이
8장이나 수록되어 있어 눈부터 즐거워진다. 이우일의 유머러스한 일러스트들은 웃음을 자아내면서, 유쾌하고, 따뜻하다. 선현경의 솔직하고 담백한 글은 이십 년차 부부의
투닥거림과 알콩달콩 귀여운 일상들을 손에 잡힐 듯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언젠가부터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모 회사의 캠페인 슬로건처럼 이제 여행은 꽉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이곳 저곳을 단기간에 누비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에 머물면서 현지인처럼 진짜 그곳의 삶을 살아보고, 그 도시의 진짜 삶을 맛보는 것이 여행 트렌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나도 한 번쯤은 이렇게 제대로 현지의 공기를 마시며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잠시 다녀오는 여행이
아닌, 이들처럼 그곳에 눌러
앉아 살아보는 그런 여행 말이다. 2019년 늦여름, 이제
이들 부부는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다음에는 어느 나라에 가서 살게 될 지,
또 어떤 유쾌하고 기분 좋은 여행이야기를 들려줄 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