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 삶, 용기 그리고 밀림에서 내가 배운 것들
율리아네 쾨프케 지음, 김효정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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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이후로 나와 다른 이들이 품은 가장 큰 의문은 3킬로미터 가까운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내가 어떻게 경미한 상처만 입고 살아남을 수 있었나 하는 점이었다. 비록 한참 후에는 의식을 되찾은 순간에 감지한 것보다 부상이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추락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내 상처는 대수롭지 않은 수준이었다. 쇄골을 제외하면 부러진 데가 없었고 피부에 입은 상처도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기적이었을까? 아니면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이유가 있을까?   p.118~119

1971 12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열일곱 살 소녀 율리아네 쾨프케는 엄마와 함께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푸카이파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로 겨우 1시간 거리였고, 오전에 이륙한 비행기의 처음 30분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륙 20분 후 샌드위치와 음료로 구성된 간단한 아침식사가 나왔고, 10분 뒤에는 승무원들이 식사 뒷정리를 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승객들은 저마다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가 폭풍전선을 만났다. 조종사는 뇌우를 피하지 않고 지옥의 먹구름 속으로 똑바로 돌진했고, 환한 대낮이 밤처럼 어두워졌다. 사방에서 끊임없이 번개가 내려쳤고, 열린 짐칸에서 머리 위로 물건들이 쏟아져 내리고, 물건들이 날아다녔고,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울부짖었다. 그렇게 급속하게 비행기는 추락했고, 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기적처럼 단 한 명만 빼고는 말이다.

율리아네 쾨프케는 3000미터 상공에서 페루의 다우림으로 추락했지만,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다. 인적이 없는 깊은 밀림 속에서, 쇄골이 부러지고 다리에 찢어진 상처를 입은 채 깨어난 그녀는 극적으로 구조될 때까지 무려 11일간 홀로 사투를 벌이고 살아남는다. 무려 3킬로미터 가까운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어떻게 경미한 상처만 입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도 신기한 일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보통 사람이었다면 기적은 딱 거기까지였을지도 모른다. 밀림을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다우림은 살벌하기만 한 곳일 테니 말이다. 그곳은 온갖 생명이 들끓는 곳이지만 인적은 찾아 볼 수 없고, 질척대는 습기와 각양각색의 곤충들과 악어와 뱀, 왕대머리수리 등 목숨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요소들이 차고 넘치는 곳이다. 율리아네 쾨프케의 부모님은 동물학자였고, 어려서부터 많은 것들을 경험해왔으며, 실제로 밀림에 들어가 살아본 적도 있었다. 당연히 야생 생활에도 익숙했고, 수많은 곤충과 동물들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정말 영화 같은 생존 실화가 아닐 수 없다.

 

"이 주위에 딱정벌레, 개미, 풍뎅이, 진드기 같은 생물이 몇 마리나 기어다니고 날아다니는지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한테 무슨 소용이 있죠?"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연구를 통해 잘 알게 된 대상만 제대로 보호할 수 있습니다. 숲과 생물다양성을 눈앞의 이익을 위해 파괴하는 것보다 보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유익하고 가치 있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될 겁니다."    p.246

비행기 추락사고에서 홀로 살아남은 열일곱 소녀는 이제 쉰여섯이 되었다. 그녀를 유일한 생존자로 만든 그날의 추락 사고는 그녀의 나머지 인생 전체에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녀의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했다. 그녀가 떨어졌던 팡구아나 밀림이 일생을 걸고 지켜야 할 삶의 목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사고 이후 무분별한 개발에 맞서 페루 밀림을 보호하기 위해 동물학자로서 평생 헌신해왔다. 유명한 동물학자인 부모님을 두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전 세계의 생물다양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따라야 할 행동 규칙들을 숙지하며 밀림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덕에 기적처럼 추락 사고 후에 생존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녀의 인생 행로가 정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민가에서 한참 떨어진 열대 우림 한가운데서 11일 동안 헤매는 일을 아마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견뎌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은 1971년 비행기 사고가 일어난 지 꼭 40년 만인, 2011년에 독일과 미국에서 거의 동시에 출간되었다. 물론 그 동안 수많은 곳에서 출간 제의를 받았지만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독일의 거장 영화감독 베르네 헤어조크를 만나 그와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희망의 날개>라는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면서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왕좌의 게임>에 출연한 소피 터너가 영화화 판권을 사들여 조만간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엄마를 잃은 슬픔과 홀로 살아남았다는 자책 속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 한 여성의 성장기이자, 무분별한 개발에 맞서 페루 밀림을 보호하기 위해 헌신한 한 동물학자의 분투기는 놀라울 정도로 감동적이다. 실화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스토리라서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작품이기도 하다. 기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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