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읽다, 쓰다 - 세계문학 읽기 길잡이
김연경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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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오만과 편견>은 인간의 속된 욕망과 생활의 논리(짝짓기와 돈!)를 건전하고 합리적인 시각에서 훌륭하게 묘파하면서 재기 발랄한 위트와 유머, 경쾌한 현실 풍자와 비판마저 곁들인 수작이다.... 한데 정작 작가 제인 오스틴은 평생 독신이었고, 당시로서는 아주 드물게도 여자가 아닌 소설가의 삶을 살았다. 그녀가 남긴 적지 않은 편수의 소설은 거의 다 구혼을 다루고 있다. 사실상 첫 소설인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처럼 되고 싶은 희망을 슬쩍 내비친 그녀가 실은 "식구들 가운데 유일하게 못생긴 편이라 지식과 교양을 쌓으려 열심히 공부"한 메리에 가까웠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p.144~145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로 시작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결혼에 이르는 길'을 지배하는 심리적, 사회적 결을 밝히는 데 집중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열정과 낭만, 결혼 생활의 생리에는 무관심하다. 그리하여 오만이 거만이 아니라 진정한 자긍심과 동의어가 되는 순간 소설도 끝이 난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작가인 제인 오스틴은 평생 독신이었다는 것, 그런데 그녀가 남긴 적지 않은 편수의 소설들은 거의 다 구혼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것을 허구의 세계인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이루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 알지만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한번쯤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읽어본 적은 없는 것이 바로 '고전'이다. 이 책은 작가의 사생활을 엿보며 작품의 배경을 읽고, 직접 작품의 줄거리와 캐릭터를 분석하며 고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이드이다. 저자가 어릴 때부터 좋아한 <적과 흑>, <고리오 영감>, <보바리 부인> 19세기 프랑스 소설을 시작으로, 문학 이상의 문학을 보여준 작품들인 <오이디푸스 왕>, <신곡>, <파우스트>, <햄릿>,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과 소설 이상의 소설을 보여준 <프랑켄슈타인>, <모비딕>,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주로 '생활과 일상이 담긴 세태 소설인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 <자기만의 방>, <안나 카레니나>, <위대한 개츠비> 등과 성장, 청춘 소설인 <데미안> <삶의 한가운데>, <어린 왕자>, <설국> 등 다양한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소위 바틀비 선언인 "(그것은) 하기 싫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에는 뭔가 달리 하고 싶은 것이 있음이 은근히 전제된다. 어쩌면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면벽 공상')알 수도 있겠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은 바틀비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다. 결코 그가 '까다로운/특별한(particular)' 것은 아니다. 실상 그는 필사된 서류를 검토하는 일이나 우편물 도착 여부를 확인하는 잔심부름은 거절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네 통의 긴 문서 필사)은 꾸준히 한다.    p.285

소설가이기도 한 저자는 2009 '문지 문화원 사이'에서 세 학기 동안 세계 문학 읽기 강좌를 했고, 2010년 가을부터 2011년 상반기까지 네이버 문학 캐스트에 세계 문학을 소개했다. 2012년부터 2015년 까지는 <책앤>에 글을 연재했고, 2016년부터는 서울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과 소설 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고전을 가르치며 그 분야에 관해서는 전문가인 저자가 마음 먹고 쓴 '고전 길잡이' 인 것이다.

세계 문학 읽기, 그 중에서도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고전 문학 읽기란 사실 만만치 않은 일이다. 보통은 페이지가 두툼하고, 행갈이 없이 이어지는 만연체는 졸리기만 하고, 발음하기 힘든 지명들과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이 가득해 어렵고 읽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 읽기를 한 번쯤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아마도 이 책이 제대로 된 길잡이를 해줄 것 같다. , 이 책에 수록된 80여 편의 고전을 거의 다 읽었다면, 저자의 가이드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고전들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나 놀라운 통찰력을 알려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목록의 80여 편을 아직 읽지 않았거나, 읽을 예정이라면 당신의 고전 입문에 굉장히 흥미로운 도움이 될 거라는 건 명백하다. '우리는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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