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윈도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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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신경질적으로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진실 혹은 거짓, 둘 중에 골라보게. 자네는 남편에게도 이렇게 빡빡하나?"

"엄격히 말해서 진실은 아니네요."

그는 코웃음을 쳤다. "엄격히 말해서 진실인 것은 없어." 그가 말한다. "그저 진실이거나 그렇지 않은 것 둘 중 하나지. 사실이거나 사실이 아니거나."    p.152

애나는 광장공포증을 겪고 있어, 거의 일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살고 있다. 지금은 8주에 걸쳐 다섯 번 정도,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 중이다. 집 뒤의 정원으로, 그것도 우산을 방패 삼아 문을 열며 겨우 몇 걸음 떼는 게 고작이지만 말이다. 그녀가 열린 공간에 대한 공포, 일련의 불안장애를 겪기 전에 직업은 정신의학을 공부하고 아동심리상담사로 활약했던 의사였다. 현재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환자들에게 온라인으로 상담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매일같이 이웃들의 일상을 훔쳐보고 촬영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남편과는 별거 중인데, 딸은 남편과 함께 거주하고 있어 그들과 가끔 통화하는 것이 전부이다.

어느 날, 건너편 집에 러셀 가족이 이사를 오게 되는데, 엄마와 아빠, 아이 하나가 있는 가족 구성이 예전 자신의 가족의 정확한 복사판이라고 생각해 더 관심있게 지켜보게 된다. '내가 속했던 가족이, 내 것이었던 삶이,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삶이' 바로 공원 건너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현실은, 공원 이편에 있는 자신의 삶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거였지만 말이다. 제인 러셀은 아들인 이선을 시켜 이사 선물로 양초를 보내고, 자신이 직접 애나의 집을 방문해 와인을 함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들에게 어렵사리 마음을 열게 된 애나는 더욱 그 가족에게 관심을 쏟게 되는데, 그 집에서 비명 소리를 들은 다음 날, 제인이 누군가에게 칼에 찔려 피를 흘리는 장면을 창문 너머로 목격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살인사건을 목격했다고 경찰에 주장하지만, 경찰을 비롯해 어느 누구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아무 일도 없었다고, 어쩌면 애나가 복용하는 각성제들과 술로 인해 환각을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애나는 생각한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 내가 상상한 게 아니야. 과연 애나는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일까. 아니면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그저 약물과 알콜로 인한 환각 작용이었던 걸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폭스 박사님.” 리틀 형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아무에게도요.”

나는 그를 바라본다. “무슨 말이죠?”

그는 허벅지 부근의 바지를 끌어올리며 내 옆으로 와서 쪼그리고 앉는다. “제 생각에는그가 말한다. “박사님께서 마신 메를로 와인과 복용하신 약, 그리고 보고 계셨던 영화 때문에 조금 흥분하셔서 일어나지 않은 무언가를 목격하신 것 같군요.”

나는 그를 노려본다. 그는 눈을 껌뻑인다.

“내가 다 지어냈다는 거예요?” 파리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p.261

2018, 출간과 동시에 <뉴욕타임스> 1위로 뛰어올라 지금도 40주째 베스트셀러 목록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화제의 작품이다. 길리언 플린, 스티븐 킹, 루이즈 페니 등 쟁쟁한 작가들의 추천평도 화제였고, 에이미 애덤스, 게리 올드먼, 줄리언 무어가 주연한 영화 <우먼 인 윈도> 2020 5월 개봉 예정이라 영화화에 대한 기대감도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21세기의 히치콕'이라는 평가처럼 애나의 집과 러셀 가족의 집이라는 극도로 제한된 배경, 연극을 보는 듯 수직과 수평으로만 이동하는 시선이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화자'라는 방식으로 점점 그러한 의심에 무게감을 실어주며 차곡차곡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간다. 창문 너머로 목격한 믿을 수 없는 이웃집의 살인 장면, 그럼에도 실제로 살인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 온라인을 통해서만 사람들과 교류하는 애나의 폐쇄적인 삶, 그리고 애나의 가족과 관련된 과거의 그날, 그 사건은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복선과 겹겹의 반전으로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페이지를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놓치지 않도록 휘몰아치며 달려 간다. 세상 밖에 갇혀 있는 한 여자, 영웅도, 탐정도 아닌 그저 가여운 여자. 가족과 별거 중인데다 술과 약에 절어 사는 이상한 여자. 공원 건너편에서 한 여자가 칼에 찔리는 장면을 목격했지만, 그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눈치재지 못했고, 믿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문은 잠겨 있고, 창문은 닫혀 있고, 말 그대로 자신의 집에 스스로가 원해서 감금되어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말미에 극중 애나가 보던 영화들의 리스트를 수록해 두었다. 매일 매일 그녀가 틀어 놓은, 그녀가 보고 있던 영화들은 물론 작품에 굉장히 큰 영향을 주고 있어 더욱 흥미로운 리스트가 아닐 수 없다. 저자인 A.J.핀은 '작가와 독자가 훔쳐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가 허구인 줄 알면서도 타인의 삶을 경험하고 그들의 모험을 즐기기 위해 소설을 읽는 이유'라고 말이다. , 그러니 망설일 것 없다. 우리도 애나가 바라본 그것을, 그녀의 창문 너머로 훔쳐보자.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누가 거짓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진짜 현실은 어디에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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