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의 역사 - 평평한 세계의 모든 것
B. W. 힉맨 지음, 박우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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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표면을 평평하다고 이해하면 다음과 같은 어려운 질문에 부딪힌다. 지구는 어떻게 안정성을 유지했을까? 또 일출과 일몰, 별들의 움직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늘이 신화 작자들을 사로잡은 것은 날씨가 맑은 날에 (지금은 대부분의 장소에서 보기 드물지만)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별들이 쏟아질 듯 밝게 빛나고 꽤 가까이 있는 듯하지만 그래도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존재였다는 점이 한몫을 했다. 반면에 지평선에서 땅과 하늘이 만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착각이라는 것은 땅을 조금만 돌아다녀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둥글게 펼쳐진 듯 보이는 창공과 근본적으로 평평해 보이는 땅 역시 착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겨났다.     p.71~72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이 상식이 된 세상이지만, 아주 옛날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고 한다. 평평한 육지를 둥근 하늘이 덮고 있으며, 바다 끝까지 가면 아래로 떨어진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 후로 과학적 탐구를 통해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과학자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엄연한 사실로 믿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구가 둥글지 않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들에 따르면 지구는 구형이 아니라 평평한 접시 형태의 원반이며, 세계지도의 형상처럼 북극이 중심에 있고 우리가 남극이라 여기는 지역은 거대한 얼음벽으로 둘러싸인 원반의 테두리일 뿐이다. 기존의 지리학과 지구과학, 천문학 등의 성과를 깡그리 부정하는 참으로 놀라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고는 이들처럼 '지구의 평평론'을 주장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베게트가 활약하기 전인 1927년에 E.M.포스터는 소설 쓰기에서 '평면적 성격'을 분석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평면적 성격의 인물들은 일관된 생각이나 성격을 나타내며 입체적이거나 복잡한 존재가 아니다. 훗날 논평자들은 포스터가 말한 평면적 성격을 종종 부정적으로 해석했지만, 사실 포스터는 평면적 성격이 유용한 역할을 하며 독자들에게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에서 위안을 느끼게 해준다고 믿었다. 그러한 1차원적인 인물들은 신뢰할 수 있고 쉽게 기억된다는 이점이 있다.   p.250

이 책은 평면의 언어적 개념부터 평평한 지구 모형을 오랫동안 받아들인 고대인들의 생각, 풍경에 대한 미학적 가치, 자연 그대로의 평평함과 인간이 만들어놓은 평평함, 스포츠와 예술 등에서의 평면성 등을 여러 사례를 들어가면서 조명한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평면이라는 것의 가치를 통찰하고, 그에 대한 인식과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든지 분명 평면이 지배하는 공간에 살고 있다. 평평한 종이, 평면 디스플레이, 평평한 책상, 평면으로 된 달력, 책장, 지도, 침대 등등... 평면과 평면 질서 속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반면 우리가 우주에서 지구의 둥근 모습을 바라본다면, 평면성이라는 개념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사물은 규모와 시각에 따라 달라 보이게 마련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평면의 언어적, 공간적 개념을 단순히 시각적인 면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이고,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로서도 읽어내고 있다. 지형학에서의 풍경, 평평한 물질들을 넘어 사진, 영화, 소설, 음악에서의 평면성도 이야기하고 있어 다양한 시각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평면의 중심적 역할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좋을 것 같다. 그 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평면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평평함의 새로운 얼굴을 만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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