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보는 그리스신화 - 오늘, 우리를 위한 그리스신화의 재해석
박홍순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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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이카로스의 실패한 시도에서 미래에 대한 기대를 찾으려는 것일까? 중용을 벗어난 무모한 도전이 초래한 비극적 최후라는 교훈과 달리 왜 그의 도전에서 희망을 발견하려 할까? 다이달로스가 경고한 위험 요소인 태양의 열기와 바다의 습기는 자연의 보편적 질서에 해당한다. 인간 세상에 적용하면 사회의 질서가 된다. 신화는 도전하더라도 자연이나 사회의 보편적 질서에서 벗어나지 않는 틀 내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극단으로 향하거나 지나칠 경우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경고다. 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의 교훈임에도 왜 사람들은 이카로스를 기다릴까?    p.127~128

그리스신화는 3천 년도 더 된 유서 깊은 고전이다. 대표적인 신화의 줄거리나 인물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창시절부터 그리스신화를 접해 왔다. 하지만 그리스신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줄거리를 암기하는 방식이나 비유로 사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역사적, 철학적 맥락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각 신화가 갖는 의미를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섬세하게 적용해서 통찰하고, 반드시 현대적 재해석 과정을 동반해야 한다. 그리스신화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글이나 말을 통해 거듭 거론되는 것은 이것이 현대의 인간과 사회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일 테니 말이다.

이 책은 현대 서구 문명의 중요한 축인 그리스신화의 주요 골자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소포클레스, 베르길리우스 등 고대 그리스의 저작을 중심으로 신화의 의미를 분석하고, 관련된 미술 작품을 통해 이해를 돕고 있다. 서양 미술사에서 나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화가의 작품들 중에 신화의 이해와 재해석 과정에 필요한 그림들을 엄선했다고 한다. 미술과 인문학으로 읽어내는 그리스신화라서 더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문화로부터 콤플렉스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콤플렉스로부터 문화가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근친상간을 엄격히 금하고 있는데, 욕망이 없다면 구태여 금지할 이유가 없다. 근친상간이 금지되고 있는 것은 금지라는 문화적·사회적 조치 이전에 이미 욕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욕망과 실제 행위에 뒤이어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명령과 법이 만들어진다. 금지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대한 억압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렇듯 문화라든가 존재 이전에 욕망이 있고, 이에 대한 억압이 생긴다. 욕망은 외부적인 조건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내부로부터 나온다. 그 핵심에 성적인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p.322

시시포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 저승에 가게 되자 저승의 신 하데스를 속이고 장수를 누렸다. 그리고 그 벌로 저승에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 이것은 그리스신화에서 신이 인간에게 내린 형벌을 워낙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내용이어서 많은 화가들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 작품으로 남겼다. 그런데 대부분의 화가가 신화 내용에 충실하게 바위를 굴려 올리는 방식을 그린데 비해, 타치아노는 독특하게 무거운 바위를 등에 지고 나르는 모습으로 신화의 이미지와 살짝 다르게 묘사했다. 저자는 타치아노의 관심이 시시포스가 얼마나 큰 '고통'을 받는지를 드러내는 것보다는, 어딘지 '고뇌'로 향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시시포스의 고통을 안쓰러워하기보다는 그를 보면서 깊이 있는 생각에 잠기기를 권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영원히 되풀이되는 '반복' 자체가 당장의 육체적 고통 이상의 형벌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시시포스의 형벌 이야기와 타치아노의 그림을 가지고 시시포스 처럼 쳇바퀴에 갇힌 현대인의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재해석'에 중점을 두고 있는 이 책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왜 저주였던 것일까. 권력은 왜 질서를 선이라 강조할까. 이카로스의 이야기는 무모한 도전일까, 무한한 도전일까. 전쟁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선과 악을 딱 잘라 구분할 수 있는가. 욕망은 곧 타락의 화신인가. 오이디푸스의 비극에 담긴 터부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등등... 그리스 신화 속에서 인간과 세계, 문명과 국가, 이성과 감성, 여성과 남성 이라는 네 가지 테마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 흥미로웠다. 미술과 인문학으로 새롭고 신선하게 해석하는 그리스신화, 지금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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