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그 섬에서
다이애나 마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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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하지만, 그 사람들이 내게 뭘 바라나 싶어서요. 저한테 뭘 기대하는 거 같아요?"

"누구나 바라는 걸 바라겠죠. 자기들 이야기를 알아줄 사람을 바랄 거예요. , 그리고, 그 이야기라는 게 당신 이야기의 일부가 될지도 모르죠."

그는 내가 놓친 걸 콕 집어줬다. 내 이야기라니.     p.53

대서양 한복판에 있는 신비한 아홉 개의 섬, 아조레스 제도. 한여름 투우와 축제가 끊임없이 열리고, 연보랏빛 수국 덤불과 푸른 초원, 바다가 펼쳐진 아름다운 섬이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아조레스 제도'라는 이름 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곳이 실제로 어떤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구글에 이미지 검색을 해봤더니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들이 펼쳐졌다. 자연이 줄 수 있는 극강의 아름다움과 그 속의 사람들 모습 자체가 그야말로 눈이 부셨다. 가끔 모든 걸 털어버리고 떠나고 싶을 때, 바로 그런 순간 달려가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저자인 다이애나 마컴은 취재차 캘리포니아 외곽에 정착한 아조레스 이민자들을 만나면서 아조레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취재기자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녀의 자전적 에세이로 아조레스와 그곳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폭풍 같은 한 주를 보내며 온갖 일을 겪어 몸과 마음이 더할 수 없이 피곤할 때, 잠시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며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은 바로 그런 순간에 위로가 되어주고, 삶을 돌아보며 휴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주방장은 나처럼 아조레스에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이 이곳에 이렇게 매료되었다면, 거기에는 분명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목적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주변을 좀 보세요. 화산이며, 바다며, 꼭 잃어버린 시간 속에 들어온 것 같잖아요. 누군들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어요?" 라는 말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려는 걸 꾹꾹 참으며, 입을 앙다물고 초 치는 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부름 받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좋아서였다.    p.144

이 책을 읽으면서 '열 번째 섬'이라는 개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조레스 이민자 중 한 사람인 알베르투는 이렇게 말했다. "열 번째 섬은 마음속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라오. 모든 게 떨어져 나간 뒤에도 남아 있는 것이죠." 라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든 떠난 적 없는 장소'라니 얼마나 든든한가. 나만의 비밀 공간, 내 영혼이 머무는 곳, 그리고 깊은 그리움이 되는 그런 곳 말이다. 저자에게 아조레스 역시 점점 그런 장소가 되어 갔을 것이다. 직업적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뜻하지 않게 아조레스에서 세 번의 여름을 보내면서, 자기 안의 상실과 갈망을 마주하고 스스로 바라던 많은 것들을 찾아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긍정적인 섬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의 태도 역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과거를 기억하고 슬픔을 간직하되 오늘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말이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앨리스의 거울, 나니아의 옷장, 해리포터의 9 4분의 3번 승강장, 또는 무엇이 됐든 소설 속 주인공을 원래의 현실 세계로 돌려보내주는 통로를 통해 '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그때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여지없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곳에서 경험했던 모든 순간들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본 기억이 우리의 발목을 움켜잡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그곳의 냄새를 맡고 바람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대항해시대의 첫 번째 행선지이자 화산 폭발의 자연재해를 입은 곳이기도 하며, 독재와 냉전시대를 겪어낸 역사가 숨 쉬고 있는 섬. 나도 언젠가 꼭 한번 그곳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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