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죽였을까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7
하마오 시로.기기 다카타로 지음, 조찬희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지만 이는 모두 소설가의 공상입니다. 아하하하. 꽤 재미있지 않나요? ? 어디 안 좋으십니까?

파랗게 질린 얼굴로 이야기를 듣던 백작 호소야마 히로시는 휘청취청 일어서서 간신이 문에 손을 대고 말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라고! 내가 사람을 죽였다니. 그 녀석 참 괘씸하군. 자살이야! 자살이라고!"     p.132

 

평소 도쿄 근교 피서지로 인기가 있는 K 마을의 어느 별장에서 무시무시한 참극이 일어났다. 오다 세이조라는 젊은 실업가와 그의 아내 미치코가 별장에서 참혹하게 살해된 것이다. K 마을은 해수욕과 피서지로 유명했고, 최근 들어 중상류층의 주거지까지 들어서게 되면서 매우 번화한 지역이었다. 그런 곳에서 느닷없이 참극이 일어났으니,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오다 가문은 선대가 무역상을 해서 상당한 자산가였는데, 세이조는 선천적으로 그리 건강한 편이 아니어서 사건 당시에는 별장에서 요양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아내인 미치코는 유명한 대학교수의 딸로 총명하고, 상당한 미인으로 유명했다. 그녀의 주변에는 젊은 남자들이 끊이질 않았었는데, 이들 부부의 결혼이 연애가 아니라 중매였다는 사실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순탄치 못하다는 소문이 계속해서 들려 오던 참이었고, 세이조가 아내를 학대한다는 소문과 미치코가 젊은 학생들과 교제하는 것을 보고는 품행이 방정하다는 소문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범인은 사건 현장에서 흉기를 손에 쥔 채로 하인들에게 발견되어 바로 체포된다. 고데라 이치로라는 대학생으로 미치코의 아버지가 근무하는 대학의 학생으로 오래 전에 큰 신세를 졌던 적이 있다. 그는 미치코와 같은 나이로 이들 부부와도 매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고, 사건 당일에도 다른 지인과 함께 넷이서 늦은 시간까지 마작을 하다 별장 1층에서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가 어떻게 이들 부부를 살해하게 되었는지, 그 방법과 동기에 관해서는 체포된 후 계속 묵비권을 행사해 알 수 없다가 결국 자신이 범인임을 인정하고, 사형 판결을 받게 된다. 이 작품의 화자는 바로 고데라의 변호사였는데 중반쯤 이야기가 진행되면 사형 선고가 내려지고 피고가 공소를 포기해 그대로 사형이 집행되어 버린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가 죽고 나서 옥중에서 기록한 수기를 손에 넣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하마오 시로의 첫 번째 단편소설 '그 남자가 죽였을까'이다.

 

"신경증이라는 녀석은 평소에는 알 수 없는 인간의 심오한 마음을 감지하지. 이런 사례는 우리 정신과 의사에게 매우 적절한 연구 대상이네."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 또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과연 이 날 밤,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매우 기묘한 사건이었다. 어쩐지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신경증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어떤 부분이 관련이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p.240

 

1880년대 후반 일본에 처음 서양 추리소설이 유입되었을 당시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의 주요 추리소설을 엄선하여 연대순으로 기획한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그 일곱 번째 작품이다. 가능한 한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을 선정하여 번역하고자 했다는 취지에 맞게 이번 작품 역시 처음 만나는 작가이다. 하마오 시로는 일본 탐정소설 문단의 제2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30년대에 활약한 작가이고, 기기 다카타로는 '일본탐정작가클럽' 회장을 역임하며 문단을 이끌어온 작가라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두 작가가 소설가가 되기 전 법조계와 의료계라는 전문 분야에서 활동했고, 소설에 자신의 전문 지식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다.

하마오 시로는 변호사 겸 추리소설가로 검사로 재직 당시 범죄 에세이를 여럿 발표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자신의 법률 지식을 활용한 본격 추리물을 발표했다고 한다. 기기 다카타로는 대뇌 생리학자이자 추리소설가로 생리학을 전공했고, 러시아 유학 당시 조건 반사학을 연구했으며, 의학 평론가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두 작가의 작품들은 일본 법정 추리소설과 의학 추리소설의 고전에 해당하게 되는데, 오래 전에 쓰였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원류를 이해하고 시대별 흐름을 알 수 있다는 점도 이 시리즈만의 매력이지만, 그냥 작품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아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시리즈이다. 현대의 익숙한 추리소설의 틀에서 벗어나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고, 현대의 미스터리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다양한 시대의 작품들을 만난다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나름 추리, 미스터리 장르의 책들을 많이 읽어 왔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일본의 초창기 추리 소설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일본 추리소설 하면,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밖에 몰랐다면, 그들의 작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도 우리가 이 시리즈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