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3부 : 사신의 영생 (반양장) - 완결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단숨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두 전함이 4차원과 3차원 공간의 경계 근처에 정박했다.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다. 4차원 조각의 가장자리는 형태가 없고 눈앞에 펼쳐진 우주는 깊은 호수의 수면처럼 고요하고 아득했다. 은하계의 별바다는 언제나처럼 찬연한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 광경만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의 다른 차원에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걸 상상할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이한 장관이 펼쳐졌다. 눈앞의 우주에 빛나는 긴 선이 나타났다.   p.323~324

우리가 <삼체>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한다. <삼체> 3부작은 2013년 출간된 1권이 448페이지, 2016년 출간된 2권이 708페이지, 그리고 2019년 출간된 3권이 808페이지로, 전체 1,964페이지에 달한다. 출간되었을 당시부터 이 시리즈를 읽어 왔다면 완간 되기까지 무려 6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며, 완간 되기를 기다렸다 이번에 3부작을 한꺼번에 읽는 다고 해도 무려 이천여 페이지라는 엄청난 분량의 압박을 견뎌야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작품은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우선, 나 역시 이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읽은 지 3년 정도 지났기에 지난 시리즈를 다시 한번 들춰봐야 했으니, 간단히 지난 이야기들을 정리해 본다.

1권에서는 과학자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줄줄이 자살하고, 환경 보호론자들의 활동이 지나치게 왕성해지기 시작하고, 과학 연구 기관과 학술계 범죄가 급증하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그런데 범죄 동기가 모두 이상하다. 돈이나 복수를 위해서도 아니고 정치적 배경도 없고, 그저 단순한 파괴였던 것이다. 신소재를 연구하는 과학자 왕먀오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경찰과 군인을 통해 현재 과학계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에 대해 알게 되고, 그것을 조사하던 중 삼체라는 가상현실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세 개의 태양이 존재하는 기이한삼체 세계는 기온이 온화하고 태양 운동이 규칙적인 항세기와 하루에도 혹한과 폭염이 번갈아 휘몰아치는 난세기가 불규칙하게 교차하면서 문명이 멸망하고, 또 새로 시작하고 있었고, 가상현실로만 치부했던 그것이 진짜 현실 세계와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규모가 커진다.

지구 삼체 운동은 인류 문명에 철저히 절망해 자신의 종을 증오하고 배반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과 자손을 포함한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활발히 활동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인류가 이미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광기를 억제할 수 없기 때문에 특별한 존재의 힘을 빌려 인류 사회를 강제적으로 감독하고 개조해서 전혀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지구는 이미 인간이 거의 살지 않는 곳으로 변했다. 지구에 남아 있는 사람은 50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고 싶지 않고 언제든 들이닥칠 사신도 두렵지 않은 이들이었다. 벙커 세계의 용감한 사람들이 지구로 여행을 오거나 휴가를 보내러 오기도 했지만 그건 목숨을 건 여행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암흑의 숲 공격이 가까워지고 사람들이 벙커 세계의 생활에 적응하면서 먹고살기에 바빠 지구에 대한 그리움도 점점 옅어졌다.    p.567

2권에서는 천체 물리학자인 예원제와 만난 뤄지가 그녀로부터 우주사회학을 연구해보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것은 별볼일 없는 평범한 학자인 뤄지가 지구를 구원할 면벽자 중 한 명으로 선발되게 되는 이유와 연결된다. 그렇다면 면벽자란 무엇인가. 지구인들의 면벽 프로젝트가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플롯이다. 삼체인들이 지구 문명을 멸망시키기 위해 태양계로 거대한 우주 함대를 파견한다는 소식에, 지구에서는 일명 도피주의가 만연했다. 삼체인들이 지구로 도착하게 되는 것은 400여년 뒤로 예상되지만, 그들에 의해 인류의 첨단 과학 기술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도록 멈춰진 상태였다. 당연히 450년 후 지구와 태양계를 지키기 위한 그 어떤 방어 계획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므로,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일단 지구를 벗어나서 도피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에 정부는 지구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면벽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시행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면벽 프로젝트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해 삼체 위기가 시작된 지 200여년 뒤 동면에서 깨어난 인물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색다른 미래의 풍경으로 확장된다.

, 그리고 드디어 완간된 3부작 대망의 마지막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지막 남은 유일한 면벽자 뤄지에 의해 항성 187J3X1이 공격을 당한 이후로, 지구와 삼체 세계는 대치 상황에 들어간다. 삼체 세계에 대항하기 위해 지구에서는 스타 프로젝트와 계단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스타 프로젝트는 태양계 밖의 일부 항성과 그 부속 행성의 소유권을 판매하는 것이고, 계단 프로젝트는 삼체 세계를 직접 정찰하기 위해 인간이 뇌를 비행체에 담아 우주로 쏘아 보내는 것이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안락사를 선택한 원톈밍은 대학 시절 짝사랑하던 청신을 위해 별(DX3906)을 선물하기로 한다. 그녀의 명의로, 자신의 개인 정보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은 채 엄청난 거액을 들여 생의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왔고, 법에 따라 안락사의 다섯 단계가 진행된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 단계의 사망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들이닥쳐 주사 줄을 잡아당겨 진행을 멈춘다. 유리벽 바깥에 서 있는 한 사람은 청신이었다. 그 후 삼체 세계를 직접 정찰하기 위해 인간이 뇌를 비행체에 담아 우주로 쏘아 보내는 계단 프로젝트에 윈톈밍이 선택되고, 자신에게 별을 선물한 사람이 윈톈밍이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서기 시대의 우주학자인 청신은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동면에 들어가게 된다.

264년간 동면해 있던 청신이 깨어나고, 주가암흑의 숲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인류는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암흑의 숲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중력파 발사대를 설치한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 중력파를 발사할 검잡이로 청신이 선택된다. 삼체 함대로부터 공격으로 인류는 절멸한 위기에 처하고, 결국에는 3세대기 가까이 이어져온 삼체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냉혹한 우주 전체에 대한 공포와 대면하게 되는데... 마지막 이야기는 단순히 몇 줄의 줄거리 요약으로는 정리할 수 없을 만큼 우주에 관한 놀라운 상상력과 시간의 본질과 창세의 비밀에 통찰력이 압도적인 작품이었다. 작가의 방대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천체 물리학과 수학이라는 학문의 매우 리얼한 미래를 보여주고 있어 절대 가볍게 읽을 수만은 없는 작품이지만, 스토리 자체로서의 힘도 굉장하고, 지금껏 만나왔던 그 어떤 SF 작품과도 다른 매력의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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