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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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방을 나가고 나서 침대에 누워 과거를, 오빠와 어머니와 내가 입술보다 마음으로 이야기할 때가 더 많았던 세월을 샅샅이 훑어 보았다. 은수카가 등장하기 전까지 모든 것이 은수카에서 시작됐다. 이페오마 고모의 은수카 집 베란다 앞에 있는 작은 정원이 침묵을 밀어 내기 시작하면서. 지금 내게 오빠의 반항은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졌다. 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라는 함의를 품은. 쿠데타 이후에 정부 광장에서 녹색 잎을 흔들던 군중이 외친 것과는 다른 종류의 자유.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    p.27

 

고등학생 캄빌리는 나이지리아에서 식음료 사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두었기에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권위와 폭력을 일삼으며 가족들에게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인물이었다. 어머니는 가정폭력으로 인해 수차례 유산을 했고, 최근에도 어렵게 아이를 가졌다 같은 일을 겪는다. 캄빌리와 오빠인 자자 역시 아버지가 짜 놓은 일과표 대로 움직여야 했고, 아버지의 명령은 무엇이든 따라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자가 영성체를 하지 않겠다고 아버지의 명령을 거부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캄빌리는 이 사건을 '우리 집이 풍비박산 나기 시작'했다고 여겼다. 그녀의 일상은 이 사건 이후로 엉망이 되지만, 그 과정에서 캄빌리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기 시작한다.

엄청난 고생 끝에 이룬 자수성가, 가톨릭교로 귀의한 원리주의자인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행하는 많은 것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딸의 발에 뜨거운 찻물을 붓고, 반항적인 행동을 했다고 발로 걷어 차는 등 폭력적인 면모도 그렇지만, 일상의 소소하지만 불합리한 명령들, 규칙들 역시 그러하다. 가족 내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사회적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고, 봉사와 헌신으로 추앙 받으며,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투사이기도 하니 말이다. 캄빌리는 다른 도시에 사는 고모네 가족을 만나면서 자신과는 다르게 자유롭고 자주적인 사촌들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억압적인 가부장제 속에서 침묵하던 소녀가 주체적인 자아를 찾아 나서는 여정은 만만치가 않지만 말이다.

 

 

 

성 베드로 예배당에는 성 아녜스 성당에 있는 것 같은 커다란 촛대나 화려하게 장식된 대리석 제단도 없었고, 여자들이 머리카락을 가능한 한 많이 가리게끔 두건을 묶지도 않았다. 봉헌 행렬을 위해 나올 때 보니 어떤 여자들은 속이 비치는 검은 베일을 머리에 쓰기만 했고 어떤 여자들은 바지를, 심지어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버지가 봤다면 노발대발했을 것이다. 여자가 하느님의 집에서 머리카락을 보이면 안 되지. 여자가 남자 옷을 입으면 안 되지, 특히 하느님의 집에서는! 아버지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p.291

 

이 작품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엄마는 페미니스트>로 세계에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전한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데뷔작이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단의 격찬을 받으며 영미권 문단에 "아프리카 문학의 거장 치누아 아체베의 21세기 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고 한다. 전부터 궁금했던 작가였는데, 이번에아디치에, 소설읽기온라인 서포터즈로 만나게 되었다.

 

캄빌리의 일상이 마치 소설로 보는 나이지리아식 「스카이 캐슬」을 방불케 할 정도라는 소개 문구처럼, 이 작품 속에서 교육에 집착하는 아버지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녀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교육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본문에 나이지리아 토착어들이 자주 등장하기도 하고,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서사 자체가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인 면에서 우리와 너무도 먼 나라인 나이지리아의 그것이 한국인들에게 공감이 되거나 이해될만한 여지가 많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새로운 가족의 형태, 그리고 진정한 교육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아디치에, 소설읽기두 번째 작품인 '아메리카나'에 더 기대를 갖고 있다. 선명한 색상 대비의 인상적인 표지 때문이기도 하고,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발랄한 페미니즘으로 꼬집고 있다고 하니, 더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젊은 포토그래퍼 김강희와 콜라보레이션한 표지로 책을 읽기도 전부터 이미지와 작품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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