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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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프는 어떤 논리인지 이해했다. 지넷이 좋아하는 탐정소설이었다면, 애거서 크리스티나 렉스 스타우트나 할런 코벤의 작품이었다면 지금이 바로 미스 마플 아니면 네로 울프 아니면 마이런 볼리타가 사건의 전말을 폭로하는 마지막 장의 클라이맥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중력처럼 견고하고 바위처럼 단단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누구라도 같은 시각에 두 군데의 장소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1, p.163

열한 살 소년이 잔인하고 끔찍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리고 어린이 야구단 코치이자 교사인 테리 메이틀랜드가 거의 1,60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체포된다. 그곳은 야구 경기장이었고, 경기는 9회 말 상대팀이 1점차로 리그의 준결승전에서 이기고 있는 참이었다. 모두들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그 중요한 순간에, 경찰관 두 명이 3루 베이스라인을 따라 걸어 들어온다.

"테런스 메이틀랜드, 당신을 프랭크 피터슨 살인범으로 체포한다."

 

테리는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도 프랭크 피터슨이 언제 죽었는지 신문과 뉴스를 봐서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자신은 다른 도시에 동료 교사들과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에게도 그를 공개적으로 체포할만한 막강한 증거가 있었다. 범행 전후로 추측되는 현장 근처의 수많은 목격자들이 증언했고, 법의학적 증거 역시 테리를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테리의 알리바이는 너무도 확실했다. 피터슨이 납치됐을 때 유명한 작가의 강연을 듣고 있었으며, 피터슨이 살해됐을 때는 최소 여덟 명과 저녁을 먹고 있었고, 그 이후의 시간 역시 동료 교사들, 호텔 라운지의 바텐더, 호텔 보안 영상 등으로 완벽한 알리바이가 만들어졌다. 상식적으로 누구라도 같은 시각에 두 군데의 장소에 존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의 완벽한 대역 혹은 공모자가 있었던 것일까?

 

"나는 크리스천이지만 범인이 죽어서 기뻐요. 기뻐요. 그리고 지옥으로 떨어져서 기뻐요. 내가 너무 끔찍한 소리를 하나요?"

"그 사람은 지옥에 있지 않아요."

여자는 뺨이라도 얻어맞은 듯이 움찔했다.

"지옥을 몰고 오지."

홀리는 데이턴 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조금 늦었지만 과속하고 싶은 욕구를 참았다. 법이 정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2, p.104

냉장고에 넣어둔 과일이나 채소가 색이 변질되고 형태가 망가지는 걸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멍들지 않고, 탐스러웠던 과일들이 갈색 덩어리로 변해서 달콤했던 냄새는 사라지고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무엇으로 변해버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겉보이게 매우 괜찮아 보이는 과일을 골랐는데, 먹으려고 반을 갈라 보니 안에서 벌레들이 득시글거리는 경우도 있다. 물컹하지도 않았고, 껍데기에 흠집 하나 없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 벌레는 어떻게 그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이 작품의 1권과 2권 표지에 등장하는 캔털루프 멜론의 겉과 속 모습이 보여 주듯이, 스티븐 킹은 바로 이 설명할 수 없는 의문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풀어 낸다. 인간 본연의 공포를 자극하는 자신만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해서, 오싹하면서 소름 돋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경우 여타의 스릴러 작품이었다면, '몇 년 동안이나 가깝게 지내왔지만, 그런 사람인 줄은 몰랐어요.' '내가 알았던 그 사람이 그런 짓을 저지를 리가 없어요.' 등등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거의 대부분의 경우, 범죄자의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은 평소에 그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여기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초자연적 공포를 결합한다.

이 사건의 중심 플롯은 '마치 지문과 DNA가 일치하는 대역이라도 있는 것처럼, 살인 용의자가 동시에 두 곳에서 목격되었다'는 점이다. 그 미스터리는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예상 외로 사건은 쉽게 종결이 되어 버린다. 그것도 1권의 중반이 조금 지나서, 느닷없이, 다소 허무하게 말이다. 하지만 담당 형사 랠프 앤더슨에게는 여전히 의문점들이 남아 있었다. 범인의 발자국을 따라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발자국이 딱 끊겨 버렸으니 말이다. 영영 해답을 찾을 길 없는 질문들이 남았고,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딱 하나였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거꾸로 뒤집어서 살펴 볼 것, 그리고 고정관념을 던져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1권의 마지막 장면에서 전직 경찰 알렉 펠리는 '파인더스 키퍼스'로 전화를 걸어 빌 호지스를 찾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티븐 킹의 '빌 호지스 3부작'에서 등장했던 바로 그 말이다. 빌이 없는 지금 홀리 기브니가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고, 2권이 시작되면서 홀리는 미궁에 빠진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그녀는 이 일련의 범죄에서 '이방인(outsider)'의 존재를 감지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불안하고, 불편하지만,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는 마력으로. 그렇게 우리는 홀린 듯 이 이야기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는 1권을 읽기 전에, 2권도 미리 준비해두어야만 한다. 누구라도 1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면, 숨도 못 쉬고 2권의 첫 페이지를 열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작가가 독자를 어디로 이끌어갈지에 대해서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스티븐 킹의 어떤 작품에서든, 내용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겠냐 싶긴 하지만.  그러니 일단 읽어보시길. 스티븐 킹이 왜 '이야기의 제왕(king)'인지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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