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지금은 모르겠지요. 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선물이랍니다."
노부인이 사라지자 콜레트가 말했다. "감동적이네요."
"그렇게 생각해요?" 위니는 콜레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러면서 콜레트 뒤쪽에 있는 돌벽 너머 공원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왜 사람들은 임신한 여자가 어떤 축복을 받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드는
걸까요? 왜 우리가 입는
손해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거죠?" p.118
퍼펙트 마더라니, 제목부터 무시무시하다. 물론 '엄마'라는 존재가 직접 되어 보지 못한 이들이라면 그게
뭐 대단한가 싶은 단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 역시 처음엔 그랬다.
뭐든지 최선을 다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내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만 해줘야 하고, 그 어떤 해로운 것도 가까이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또 기울였다. 그럴
때마다 지인들에게 듣는 얘기는 한결 같았다.
너무 완벽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엄마라는 것이 그렇게 몇 년 잠깐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매사에 완벽을
기하려고 하면 금새 지쳐서 나가떨어질 거라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이제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 '완벽한 엄마'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지만,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끌어 안고 살아야 한다는 굴레와도 같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수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매 순간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돈과 경력을 포기할 수 없어 눈물겨운 워킹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엄마도, 종일 집에서 아이만 돌봐야 하는 전업 주부인
엄마에게도 육아란 결코 수월할 수 없는 일이다.
에이미 몰로이의 첫 작품은
'현대사회가 모성에게 주는 압박감'을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5월에 첫 아기를 낳은 초보 엄마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해 '5월맘'이라는
엄마들의 모임을 만든다. 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 유모차를 끌고 공원 잔디밭에 모여 이런 저런 육아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교환하고, 고된 일상 속에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준다. 출산하기 한참 전부터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아 왔고, 출산 후에는 새로 얻은 엄마라는 삶에 대해서,
현실 친구라면 절대로 참고 들어주지 않을 수준의 이야기를 낱낱이 나눈다.
콜레트의 가슴속에 공포가
밀려들었다. 포피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날 밤 젖을
먹이며 보았던 아이의 얼굴. 진한 푸른 눈동자에 순전한 사랑을 담고서 콜레트를 보던 딸의 얼굴. 이토록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콜레트의 가슴이
죄어들었다. 이토록 바닥이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니. 어릴
적 보았던 버려진 채석장이 떠올랐다. 너무 무서워서 뛰어들 수 없었던 그곳.
좀 더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어떤 남자아이가 그곳에 떨어졌었다. 끝내 시체를 찾을 수 없었을 정도로 깊은
곳이었다.
p.404~405
모임의 멤버들은 싱글맘 위니가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우울해 보이는 것 같아,
그녀를 좀 쉴 수 있게 해주자는 계획을 세운다. 하룻밤이라도 아기 보는 일에서 잠깐 벗어나 동네
술집에 모여 간단하게 한잔하기로 한 것이다.
넬은 자신의 베이비시터 알마를 위니에게 소개시켜주고, 그들은 그렇게 고된 육아에서 벗어나 단 몇
시간, 딱 한
잔, 한 줌의 자유를
누린다. 그리고 그날 밤
위니의 아기가 그녀의 집에서 베이비시터가 잠든 사이 요람에서 증발한 듯 사라져 버린다. 완벽한 엄마들의 단 하룻밤 일탈은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악몽으로 바뀌어
버린다. 이 납치 사건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는데, 이유는 사라진 아기의 엄마가 한때 유명 배우였기 때문이다.
물론
5월맘 모임의 멤버들은 아무도 위니의 과거를 알지 못했다. 위니는 10대 시절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1990년대 초반
드라마 스타였던 것이다. 유괴된 부잣집 아기, 한때 유명 배우였던 아기 엄마는 싱글맘이었으니 방송에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소재였다.
그리고, 아기가 사라진 그날 밤, 아무것도 모른 채 술에 취해 웃고 노래 부르던
엄마들의 사진이 뉴스 1면을
장식하면서, ‘자격 없는
엄마들’이란 꼬리표가 붙은
악몽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하룻밤, 아기를
맡겨 두고 외출했을 뿐이다. 그 몇 시간의 일탈 때문에 그간의 갖은 노력과 고생과 마음들을 다 싸잡아서 '엄마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이들을 비난해도 되는 것일까. 사라진 아기를 찾는 과정과 범인을 추적하는 플롯에
대한 긴장감과 반전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육아휴직, 상급 권력자와 부하 여직원의 미투,
낙태 등 여성의 삶에 직면한 사회적 이슈들을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어 현실감 있게 표현해내고
있다는 점이 더욱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언론과 사회의 편견, 모성이라는 신화, 각각의 엄마들이 간직한 비밀과 거짓말,
내 아기도 잃어 버릴 지 모른다는 실체 없는 공포까지.. 읽을 수록 빠져드는 속도감이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케리 워싱턴
주연으로 곧 영화화될 예정이기도 하니, 스크린에서 펼쳐질 이야기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