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요리노트 -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요리사였다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지음, 김현철 옮김 / 노마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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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선생은 벽에 식탁 하나와 기둥 몇 개만 달랑 그려놓고 있었다. 레오나르도 선생 주변에는 심부름꾼들이 여럿 부지런을 떨고 있었는데,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물감을 탄다, '요리'를 나른다, 포도주통을 나른다 하고 있었다. 레오나르도 선생은 그림을 그리기 전에 이것들을 이리저리 놓아보고는 한 장면을 그리고 나면 얼른 먹어치웠다. 수도원장은 애초부터 이런 식이었다고 성질을 부렸다. 레오나르도 선생은 오로지 상 위에 올린 '요리'에 관심을 보였지 상을 둘러앉은 인물들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p.58

올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서거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5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과 그의 삶은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관한 책들이 꽤 많이 나왔는데, 이번에 만난 책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의 요리 노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요리사였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1981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코덱스 로마노프'라는 노트가 발견되었다. 이는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요리에 대한 단상을 적어놓은 유일한 노트로, 천재의 지칠 줄 모르는 창의력이 고스란히 엿보이는 노트였다. 물론, 일반적인 의미의 레시피 노트나 요리에 관련된 팁을 적어 둔 노트라고 생각하면 곤란하지만 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하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바로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라는 작품일 것이다. 이 책에는 그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당시의 상황들도 수록되어 있는데, 사람들에게 몇 세기에 걸쳐 깊은 감명을 주고 있는 걸작의 탄생 배경에 그의 요리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숨겨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 굉장히 놀랐다. 다양한 분야에 걸친 상상력과 창의성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라 그저 '천재'라는 수식어에 걸 맞는 매우 진지한 인물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그는 매우 인간적인 식도락가이자 지칠 줄 모르는 요리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특히나 주방, 조리기구, 요리법, 식이요법 등에 관한 그의 세심한 관찰과 기존의 조리기구를 개선하고 새로운 장치를 발명하는 점은 굉장히 탁월했다. 화가,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공학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계획가 등으로 활약했던 천재답게, 주방에서도 그는 절대 평범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언제 어디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프랑스 왕은 식도락가로서의 레오나르도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에 부응하느라 레오나르도는 '스파게티'를 발명했다. 그야말로 콜럼버스의 달걀이었다. 200년도 전에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스파게티와 비슷하게 생긴 것을 가져왔다. 바로 국수였다. 마르코 폴로는 국수가 먹거리라는 사실을 빼먹고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수를 식탁 장식용으로 사용해오던 중이었다. 우리가 지금 파스타로 알고 있는 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 나폴리와 이탈리아 남부 지방에 알려져 있었다. 물론 요즘처럼 국숫발이 가는 것이 아니라 빈대떡처럼 넓적한 것이었다. 레오나르도는 단지 모양새를 조금 바꾼 것이다.   p.65

이 책은 분명 요리 레시피들을 기록한 노트인데, 실제로 그걸 토대로 요리를 해볼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500년 전에 만들어 먹던 음식들이라 현대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나고, 그 중에는 정말 엽기적인 재료들도 꽤 많았다. 초에 담근 새 요리, 구멍 뚫린 돼지 귀때기 요리, 꿀과 크림을 곁들인 새끼 양 불알 요리, 빵가루 입힌 닭 볏 요리, 온갖 발가락 모둠 요리, 양 머리 케이크, 뱀 등심 요리 등 이름만 들어도 그다지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엽기 발랄한 요리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당시에는 조리기구가 오늘날처럼 다양하지 않았기에, 각각의 요리에 필요한 기상천외한 조리기구들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부분 뛰어난 창의력과 세심한 집념으로 발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조리기구들 또한 현대의 시선으로 바라보기엔 다소 난해하거나, 괜히 더 손이 많이 가게 만들게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는 많은 기구를 도안해 삽화로 남겼고, 시제품을 만들어 사용해보기도 하는 등 호기심과 탐구정신이 넘쳐 흘러 주체를 못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양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소 한 마리의 발가락을 모두 잘라내어 후추와 올리브유를 섞은 레몬즙에 하루 동안 재어두었다가 만드는 '온갖 발가락 모둠 요리'. 양 머리를 세로로 둘로 쪼개어 당근, 파슬리, 가지와 함께 삶고 국물과 푸른색 소스를 곁들여 먹는 '양 머리 케이크'. .. 뭔가 설명만 들어도 그다지 보기 좋은 비주얼은 떠오르지 않아 별로 먹고 싶지 않은 요리들이지만... 세심한 관찰과 창의성만큼은 전문 요리사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에는 그의 요리들을 사람들이 즐겨 먹었을 지 궁금해진다. 이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실제로 기록한 요리 노트의 메모들과 그가 발명했던 다양한 조리 기구들의 삽화들로 인해 매우 생생하게 당시의 요리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나만의 엽기발랄 레시피'를 기재할 수 있는 노트도 마련되어 있으니, 요리를 하다가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메모를 해둘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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