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모험 - 인간과 나무가 걸어온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정
맥스 애덤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수수하기 그지없는 자작나무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단순명료하다. 영광의 순간을 누리기 위해서는 다소 힘이 들지라도 기초를 다져야 하며, 작고 사소한 인무를 잘해내는 게 큰 무대에서 주목받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자작나무는 우리가 활동하는 무대 세트를 설치하는 일꾼이다. 인류 역사라는 커다란 무대에 자작나무가 해낸 가장 비범하고 눈에 띄는 역할은 하워드 휴스의 악명 높은 '스프루스구스'일 것이다. 나무로 만든 이 비행기는 재료의 95퍼센트가 자작나무였다.   p.48~49

 

이 책의 서두를 읽는데, 어린 시절 읽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이 떠올랐다. 누구나 다 기억하는 작품이겠지만, 다시 떠올려 보자면 나무가 사랑하는 소년에게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며 행복해하다, 더 이상 줄 게 없을 만큼 세월이 지난 뒤 자신의 나무 밑동을 내어 주며 쉴 수 있게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인생의 참된 가치, 진정한 사랑과 베품의 의미를 보여주는 작품이었지만, 실제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나무는 인간과 늘 공존해왔고,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제공해왔다. 인류 문화사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무와 숲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베풀었고 무지를 일깨워 왔다.

 

 

저자인 맥스 애덤스는 세계 곳곳의 유적지를 누비고 다닌 영국의 고고학자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더럼주에 위치한 16만 제곱미터 크기의 삼림지를 사들이고 숲 속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숲에서 나무들을 관찰하고 숯을 굽고 온갖 물건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면서, 나무야말로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와 지혜를 선사한 원천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절감하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가 수년간 숲사람으로 살면서 보고 느끼고 겪은 것을 생생하게 담은 수기이자, 고고학자의 눈으로 밝혀낸 인간과 나무가 함께 쓴 발전과 진보의 기록이다.

 

 

나는 종이를 더 많이 소비하라고 권하고 싶다...숲은 유용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종이와 성냥을 만들기 위해 조성된 숲에는 베어지는 나무보다 더 많은 나무가 새로 심어진다. 나무가 가진 경제적 가치를 보지 못하고 나무의 경제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감상적으로만 나무를 대하고 숲을 갈아엎어 특용 작물을 기르거나 초원으로 바꾸는 순간, 숲의 운명은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보며 펄프가 된 나무를 위해 눈물 흘리지 말자. 책 한 권을 더 사는 것이 숲을 구하는 길이다.    p.344~345

 

봄이 되면 새로 태어난 벌레들이 첫 비행을 하고, 새들은 마치 내일 세상이 끝나기라도 할 듯 짝짓기를 하고 둥지를 튼다. 목질의 구근들이 힘을 모아 초록빛 싹을 틔우려고 애쓰고, 개암나무 가지에선 붉은색 꽃이 피기 시작한다. 여름이 되면 수액 냄새가 줄어들고 송진과 밀랍 향이 짙어진다. 푸르른 녹음과 울긋불긋한 꽃들을 배경으로 곤충들이 웅웅거리며 바삐 날아다니고, 과실은 날로 커간다. 가을이 되면 대자연이 가진 팔레트를 총동원해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땅에 가득한 낙엽들은 노랑부터, 갈색, 빨강, 보라, 빛 바랜 초록, 주황에 이르기까지 온갖 색체가 마구 뒤섞여 향연을 벌인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눈이 내리고 숲의 땅이 보이지 않게 되며, 사위가 조용해진다. 하얀 배경에 까맣게 나무들의 모양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시간이 지나 눈이 녹으면 숲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숲의 사계절을 묘사하는 대목이었다. 역사와 과학, 예술을 넘나들며 지식의 숲을 탐험하는 중간 중간, '숲의 사색'이라는 테마로 숲의 정경들이 펼쳐지는데 너무도 근사했다. 숲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숲이 내쉬는 숨소리, 숲에서 용솟음치는 생명력 등을 글로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각 장의 말미에 달린 '나무 이야기' 또한 너무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12종의 나무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아름다운 세밀화가 곁들여져 있고, 꽃말, 용도, 특징 등과 함께 각각 나무들의 생태학적인 특징을 비롯해 여러 문헌과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일화들이 매우 재미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나무는 기적에 가까운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햇빛과 물, 이산화탄소만으로 산소와 영양분을 만들어내고, 이를 뿌리에서 잎사귀까지 자유자재로 이동시킨다. 가시를 돋우고 나무껍질을 벗겨내어 천적에 대항하기도 하고, 뿌리에 공생하는 균을 통해 동료 나무들에게 비상경보를 울리기도 한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마지막으로 조금은 독특한 저자만의 숲과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톱에 잘려나간 나무토막을 보고 감상에 젖어 안타까워하기보다, 그 자원을 어떻게 쓸모 있게 활용할 수 있을지 궁리하는 것이다. 그는 종이 사용을 중지하고 숲을 보호하자는 사람들의 취지에 대해서, 반대로 종이를 더 많이 소비하라고 권한다. 나무의 쓸모가 사라지지 않아야, 사람들이 숲을 가꾸고 관리하려는 노력이 줄어들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책을 한 권 더 사고 종이를 소비하는 것이 숲을 구하는 길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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