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하거나 반증할 문제는 없습니다. 유일한 문제는 플라톤이 바란 국가를 좋아하느냐
싫어 하느냐는 것입니다. 당신이 플라톤의 국가를 좋아한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선하고,
싫어 한다면 악한 셈입니다.
만일 여러 사람이 좋아하는 동시에 또 여러 사람이 싫어 한다면, 플라톤의 국가가 선한지 악한지는 이성이 아닌
실제로 행사되든 은폐되든 무력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철학에서 생겨난 쟁점 가운데 하나로 여전히 미결로 남아 있다. 쟁점을 둘러싼 양측에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이
있지만, 플라톤이 주창한
견해가 아주 오랫동안 거의 논박되지 않은 채 주류를 차지했다. p.181
을유사상 고전 <한 달 읽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고른 책은 <러셀 서양철학사>로 1,056페이지의 분량을 자랑하는 두툼한
책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 버트런드 러셀이 고대 그리스철학부터 현대 분석철학까지 서양 철학사를 분석적 방법으로 꿰뚫은 책으로 2500년 동안 발전해 온 서양 철학에서 일관된
철학적 주제를 하나하나 찾아내 흥미진진하게 논의하고 있다.
이번에 국내 출간 10주년을 맞아 재편집한 내용과 새로운 디자인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었는데, 사철
제본과 PUR 제본이 합쳐진
페이퍼백이라 두꺼운 페이지에 비해 무게가 굉장히 가볍다.
물론 가벼워지고 가격도 내려갔지만, 페이지 마다 글자 수는 더 빼곡하게 들어 차 있어 여전히 진입 장벽이 높은
책이긴 하다. 그래도 작은
판형과 가벼운 무게로 인해 휴대가능한 판본이라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고,
개정판에는 관련 도판도
60여 점이 새롭게 수록되어 더욱 가독성을 높여 주고 있다. 사실 너무 유명한 책이지만, 누구라도 쉽게 엄두를 낼 수 있는 분량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나온 개정판은 보급판의 느낌이고, 표지며 판형, 디자인 등등이 모두 접근하기 다소 쉽게 만들어 졌다.
그러니 기존에 읽고 싶었는데 도전하지 못했던 이들이라면 놓치지 말고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이러한 학설에는 명백한 논리적 난점이
있다. 덕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선이라면 자비로운 섭리는 오로지 덕을 이루기를 바라야 하는데도,
자연의 법칙은 무수한 죄인을 양산한다. 덕이 유일한 선이라면, 잔혹한 행위와 불의가 피해자에게 덕을 실천하는 최선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도 없어진다. 스토아학파는 이러한 난점을 지적하려 애쓴 적이 한번도 없다.
만일 세계가 완전히 결정되어 있다면, 자연 법칙들이 내가 유덕한 존재가 될지 부덕한 존재가 될지 결정할
것이다. 만일 내가
사악하다면, 자연이 강제로
나를 사악해지게 한 것이고, 덕이 준다고 가정된 내게 가능한 것이 아니다. p.342~343
러셀의 서양철학사는 저자의 개성과
주관이 강하게 반영된 책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역사를 보는 관점이란 마냥 객관적일 수만은 없다고도 생각한다. 옮긴이 역시 러셀의 분석적 방법이 몇몇 사람의
오해와 달리 특정 학파가 주관적으로 선호하는 방법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생각하고 토론하는 모든 사람이 이성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라고
서문에 밝히고 있다. 먼저
고대 철학은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문명의 발전으로 시작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분석하고,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헬레니즘 세계와 스토아학파 등으로
이어진다. 중반부의 가톨릭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부터 르네상스까지 유럽 사상을 지배한 철학들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근현대 철학이었는데, 중세를 벗어나 교회의 권위가
낮아지고, 과학의 권위가
높아진 시대였다. 또한 근대의
철학은 대체로 개인주의와 주관주의로 기울었기에,
지금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사상가들이 많을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 카를 마르크스 등등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상들과 그들의 철학이 사회, 정치 환경과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는지를 알 수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내용은 거창한 두께와 무게에 비해서 너무 술술 잘
읽혀서 놀랐고 생각보다 재미있는 대목과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은 책이었다.
방대한 분량과 엄청난 페이지 수에 비해 책장은 참 술술 넘어 가서 읽으면서 의아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방대한
두께의 책을 아무리 재미있게 읽었기로서니, 주요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기란 철학에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 없는 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러셀이 단순히 철학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있지 않고 책을 읽는 독자들이 철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명쾌하고 재미있게 쓴 책이라, 누구라도 쉽게 철학에의 입문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말하고 싶다. 그러니 당신도 도전해보시길. 서양 찰학사에 관해 가지고 있던
'어렵고,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다는 모든 편견'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