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는 살아 있는 좋은 친구보다 죽은 좋은 친구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생각을 처음 했을 때, 그는
자기가 맞는지 보려고 마음속에서 전화번호부 페이지를 넘기듯 친구들의 생사를 확인해봤다. 그가 옳았다.
그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처음에는 슬펐다.
그러나 서서히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바람이 심한 날 바람을 의식하지 않듯이.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그곳에 바람은 없다. p.69
나는 신주쿠에 있는 집에 가기 위해
하라주쿠 역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옆에는 보통 일본 여자보다 키가 큰 여성이 서 있었고,
우리는 함께 열차에 탄다.
빈 좌석이 없어서 서서 가다가 나의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나서 좌석이
비었다. 나는 앉지 않고 서서
그녀가 앉기를 기다린다. '제발 앉아요. 저는 당신이 앉기를 원해요.' 빈자리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옆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자리를 그녀에게 권했고, 그녀는 앉으면서 나에게 영어로 '땡큐'라고 말한다. 불과 이십 초 만에 일어난, 복합적이고도 조그만 삶의 발레동작은 내 마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다. '땡큐'라는 단어가
그토록 슬프게 들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는 더 진행되지 않는다.
그저 젊고 슬펐던 그녀의
'땡큐'가 유령처럼 내 마음에 반향을 일으켰을 뿐, 나는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신주쿠 역에서
내릴 때까지도 그녀는 여전히 그곳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낯선 외국에서의 생활은 이국적인 풍경이 주는 색다른
에너지가 있겠지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의 공허한 인간관계를 어쩔 수는 없다.
이 작품 속에서 나는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재회를 약속하지만 다음 날 장소가 기억나지 않아
인연을 놓치고, 낯선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지만 말없이 스쳐 지나가 버리곤 한다.
내일이 없는 관계란 삶의 덧없음과도 같은 말일 것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을 수록 집착에서
멀어지고, 매사에 허망함을
느끼기도 하고, 아웅다웅 사는
것이 부질없음을 깨달으며 노년의 쓸쓸함을 향해 간다.
브라우티건이 이 작품에서 도쿄와 몬태나를 오가는 특급열차를 타고 가고자 했던 곳은 결국
어디였을까.
나는 자기 나이보다 나이가 더 많은
배역을 맡은 배우를 유심히 살펴본다. 서리 내린 것처럼 머리카락을 하얗게 분장한 그는 배역에 맞는 나이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뼈와 근육과 피가
노쇠하고, 심장이 망각으로
가라앉고,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집들이 사라지며, 그리고
자신의 문명을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기나 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p.226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거장으로 전세계
작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 브라우티건의 말년의 삶이 드러난 작품으로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일본 도쿄와 미국 몬태나를 오가며 쓴 131편의 짧은 글들을 모은
책이다. 그의 초기작에 비해
40대에 접어든 브라우티건의
쓸쓸한 위트를 맛볼 수 있는, 조금은 '소프트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술술 잘 읽히는 작품이고,
짧은 건 한 두 페이지 혹은 단 몇 줄로도 이루어져있는 단상들이라 더욱 임팩트있게 읽히는
글들이기도 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마음에 훅 들어오는 이야기들이었고,
여러 번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문장들이었다.
1960년대 자유주의 정신을 갈망했던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1970년대 서양문화가 벽에 부딪혔다고 생각해 그
대안으로 일본행을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몬태나와 도쿄를 오가며
131개의 에피소드를 집필해 이 책을 출간했지만, 결국 사 년 후 마흔아홉의 나이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로운 곳에서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특유의 위트와 해학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타지 생활에서 오는 고독과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 나이 들어감에 대한
슬픔과 허무, 그리고 죽음에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느낌이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삶을 응축한,
한 편의 시 같은 소설들이라 더 마음에 오래 남겨두고 싶은 기분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