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지.
근데 괜찮아,
지금은 다 풀렸어."
"다행이다.
자기 아까는 되게 무서웠어."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품에 안는다. “다시는 자기가 나 때문에 무서워할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날 밤 레일라처럼. 나는 소리 없이 덧붙인다. p.98~99
연인인 핀과 레일라는 므제브에서 스키를
타고, 파리에 들러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정쯤 도로변 주차장에서 핀이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레일라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곳이었다. 핀은 그녀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면서 찾았지만 레일라는 보이지 않았고,
그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서 '실종'이라는
소재는 너무 자주 사용되고 있는 사건 중의 하나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짧은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은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게 내가
프랑스 A1 고속도로 부근
어딘가에 있는 경찰서에 앉아 경찰에 한 진술이었다.
진실이었다.
온전한 진실이 아니었을 뿐.
그리고 12년 후, 핀은 레일라의 언니인 앨런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앨런은 레일라와 녹갈색
눈동자 말고는 모든 것이 정반대였는데, 핀은 그녀와 레일라의 추모식에서 만나 가까워졌다.
새로운 일상에 익숙해지던 어느 날, 당시 실종 수사를 했던 경찰에게 연락이 온다. 12년 전 실종된 레일라가 목격됐다는 제보가
들어온 것이다. 게다가 집 밖
길바닥에서 레일라가 늘 지니고 다니던 러시아 인형이 발견된다.
이야기는 핀과 앨런의 일상이 보여지는 현재와 핀이 레일라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과거가 교차 진행된다. 과연
레일라가 실종되던 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녀는
12년 전 그날 죽은 것일까.
하지만 그녀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 지금 목격되고 있는 사람이 정말 레일라가 맞는 것일까.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다 끝내버릴 텐데. 어디
있지 묻는 핀의 이메일에 바로 답장을 준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목소리는 말했다.
그놈에게 알려주지 마,
그놈에게 네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마. 목소리를 거부할 수는 없어서 핀에게 실마리만 하나 주었다. 제발 그가 실마리를 풀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를 다시 데려가, 너무 늦기 전에. p.284
심리스릴러의 여왕 B. A. 패리스의 신작이다. 벌써 3년 째 매년 6월에 그녀의 신작을 만나고
있어,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생각나는 작가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역대급 데뷔작이었던 <비하인드 도어>는 군더더기 없는 빠른 전개로 첫 페이지를 열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려가게 만드는 가독성 최고의 작품이었다. 두 번째 작품인 <브레이크 다운>은 정신적, 심리적 폭력이 얼마나 극한의 공포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오싹한 기분을 안겨주어 무더운 여름 밤에 읽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었다. 이번에 만난 세 번째 작품 <브링 미 백>은 상상조차 못했던 짓까지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반전 스릴러로 여전히 페이지 터너로서의 매력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어느 작가나 그렇겠지만 특유의 패턴이
있어, 작품을 거듭해나가면서
비슷한 구성이나 캐릭터가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B. A.
패리스 역시 그러한데,
덕분에 데뷔작 만큼의 임팩트를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에서는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들을 계속 읽어 왔던
독자들이나, 유사한 장르의
작품들을 많이 읽어 왔던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지점,
금방 눈치를 챌 수 있는 단서들이 많아 상황 파악이 너무 빨리 된다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장르를 많이 접해 보지 않은 독자들이 읽기에는 가독성이 뛰어난 매력적인 작품임에는 틀림 없다. 특히 B.
A. 패리스의 작품을 이번에 처음 만났다면, 정말 뛰어난 데뷔작 <비하인드 도어>도 꼭 챙겨 보기를 추천한다.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B. A. 패리스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것은 틀림없다. 데뷔작 만큼 놀랍고, 독창적인 그녀의 다음 작품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