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단호해지는 심리 수업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한윤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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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맛있는 음식과 와인 한 잔을 함께 즐기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둘만의 시간을 간절히 원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남편과 대화 한마디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누구와도 내 감정을 나누지 못하고 혼자 삼켜야만 했어요. 힘들 때 그에게 잠시 어깨를 기대지도, 팔짱을 끼지도 못했습니다. 헤르베르트는 집에 돈을 벌어오는 것으로 자기가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겼죠.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하면서요.

“다른 집도 다 이렇게 살아!”   p.31~32

독일을 대표하는 심리학자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지난 40년간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처의 문제를 파헤쳐왔다. 그가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기쁨의 원천이라 여겨지던 사랑이 실제로는 가장 파괴적인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 특히 자기애에 빠져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는 심하게는 폭력으로도 이어져 결국 씻을 수 없는 아픔이 된다. 우리나라만 해도 매년 신고 되는 데이트 폭력만 1만 건에 달하며, ‘안전 이별이 사회의 주요 키워드로 떠오를 정도로 그 상황이 심각하다.

 

이 책은 일반적인 심리학 서적과는 달리 한 연인 관계의 시작과 끝을 소설처럼 이야기로 풀어놓고, 심리학자인 저자가 각각의 장면마다 필요한 코멘트를 남기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우리는 마치 연속극 드라마 보는 것처럼 이들의 이야기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나 자신이나 내 주변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사랑하는데도 외롭고, 헤어지기는 두려운 사람들에게, 관계를 끝낼 용기가 없어 상처받은 마음을 방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사랑에 빠졌어도 우린 때때로 숨 돌릴 여유가 있어야 하고, 각자 몸을 뻗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사랑에서 공감은 매우 중요하지만 독립성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계속 책임져야만 한다. 두 사람 모두 자신과 상대의 가치를 존중하고 소중히 할 때 올바른 관계가 형성된다. , 자신의 단점뿐만 아니라 장점을 스스로 인정하며 그것을 두 사람 관계에 적극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인 자존감과 인식을 갖춰야만 한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채 자신의 가치를 상대에게서 찾으려 한다면, 그 관계는 계속 삐걱댈 수밖에 없다.    p.275~276

소냐는 어린 시절 엄마를 유방암으로 먼저 떠나 보내야 했고, 아빠와의 관계는 조금 서먹한 편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몹쓸 짓을 하려고 했고, 동생인 리자는 너무 어렸으며,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충격을 극복하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처참한 상황에서 그 누구와도 제대로 대화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다. 그녀는 열여덟 살이 되자마자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독립을 했고,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매번 자신을 힘들게 했던 남자들을 선택했다. 스물다섯에 만난 네 살 연상인 헤르베르트와 결혼했지만, 남편과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으며 그녀는 결혼 생활 내내 불행했다. 그러다 마흔일곱 살에 만나게 된 남자 프랑크와 그녀의 인생에서 두 번째로 긴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지만, 그와 함께 하는 동안에도 소냐는 제대로 배려 받지 못했고, 행복할 수 없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에 많은 것을 허락한다. 그러나 과연 함께 있으면 너무도 아프고, 힘들기만 한데 이런 관계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소냐는 대체 왜 상처뿐인 관계를 쉽게 끝내지 못하는 걸까. 이기적인 자기애에 빠져 타인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매번 지켜지지 않는 약속, 상대에게 무례하게 행동하고 부당한 요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남자, 우리는 종종 자신이 상대에게 속았다는 걸, 이미 실패한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 상처만 남기는 관계를 지속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랬다는 말로 무조건 참고, 견디고, 허락해야만 하는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은 비단 이 책 속 소냐의 상황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이 고통 받고 그 고통을 합리화하는 모든 관계에 도움이 되길 바래본다. 그리하여 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삶,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용기 있는 삶을 되찾길 바란다. 나 자신은 너무도 소중한 존재라는 걸 잊지 말기를, 세상의 모든 따귀 맞은 영혼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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