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개
이언 매큐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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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수천만 명의 사망, 폐허가 된 유럽, 강제수용소는 여전히 뉴스에 오르는 화제일 뿐, 아직 인간 타락의 보편적 상징이 되기 전이었다. 순수라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진이다. 동결된 내러티브라는 아이러니 탓에 사진 속 주체들은 모두 앞으로 변하거나 죽으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순진무구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미래다. 오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신이 모든 것을 알듯이 그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누구와 결혼할지, 언제 죽을지- 알고서, 언젠가는 누군가 우리 사진을 들고 있으리란 생각은 못한 채 그들을 바라본다.   p.51

준과 버나드는 어느 작은 마을의 기차역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기차는 늦어졌고, 역에는 앉을 데라고는 전혀 없었다. 버나드는 철로 뒤쪽으로 철쭉이 수풀을 이루고 있는 것을 지켜보다가 특별히 크고 아름다운 고추잠자리를 발견한다. 그는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여행용 키트를 찾아 살충병을 꺼낸 다음 잠자리를 병에 넣으려고 한다. 굉장히 아름다운 놈이라 집에 가져가고 싶다는 버나드에게, 준은 이상한 표정으로 묻는다. '이걸 죽이겠다는 말이네... 아름다워서 죽이고 싶다?' 날도 무척 더웠고 곤충의 권리에 대한 윤리적 토론을 할 생각이 없었던 버나드에게, 준은 별안간 화를 내며 펄펄 뛴다. 이 불쌍한 곤충에 대한 태도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상을 대하는 당신의 전형적인 태도라고, 버나드가 냉정하고 이론적이고 오만하다고 말이다. 버나드는 생각한다. '내가 결혼한 이 사랑스러운 여자가 날 미워하는구나. 이런 끔찍한 실수가 있나!' 그리고는 곤충학자로서 자신의 취미를 방어하기 시작한다.

그 날의 논쟁은 적당히 마무리되었지만, 갈수록 두 사람은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준은 어떤 형태로든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버나드는 철저한 합리주의자였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로 함께 출발했지만,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곤충학자였던 버나드는 평생 과학의 제한적인 확실성과 당당함을 굳게 믿었다. 준은 신혼여행에서 검은 개 두 마리를 만나 죽을 뻔했던 그 날 이후로, 신의 존재에 대해 깨닫게 된다. 바로 두 마리 개의 형태로 나타난 악과의 조우를 통해서.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서로의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들은 적이 없었고, 서로를 같은 이유로 비난했으며, 결국 서로 말도 거의 섞지 않는 관계가 되어 각자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되었지만 말이다.

버나드는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하게 된다. 두 사람이 물병의 물을 마시는 동안 버나드에게는 최근 끝난 전쟁이 역사적, 지정학적 사실이 아니라 다수의 문제로, 무한에 가까운 개인들의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먼지처럼, 홀씨처럼 온 대륙을 뒤덮은 사람들 사이에 미세하게 나눠지는, 그러나 작아지지는 않는 가없는 비통이었다. 개체로서 그들은 영영 무명의 존재로 남을 것이며, 전체로서 그들이 상징하는 슬픔은 누구 하나 이해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남편과 형제 둘을 잃고 검은 옷을 입은 여인처럼 수십만, 수백만 명이 침묵 속에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   p.234

이야기는 존과 버나드의 사위인 제러미에 의해 진행되며, 각자의 서로 다른 기억과 생각들이 보여지고 있다. 여덟 살 때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난 이래, 언제나 타인의 부모에게 관심이 많았던 제러미는 장인과 장모에게 강렬하게 매료되어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회고록을 쓰기 시작한다. 합리주의자와 신비주의자, 인민위원과 요기, 활동가와 기권자, 과학자와 직관론자인 한 쌍의 양극단인 존과 버나드. 이들은 어째서 평생 반목하면서도 완전히 결별하지 못한 채 기이한 결혼생활을 계속하게 된 걸까. 제러미는 준이 입원한 교외 요양원에서, 장벽 붕괴 소식에 흥분한 버나드와 동행한 베를린에서 그들 각자에게 이야기를 듣는다. 하나의 경험을 다르게 기억하거나 정반대로 해석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삶이란 매 순간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누구에게나 삶이 낯설어지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때로는 우리가 믿고 살아왔던 것들의 기준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 작품 속에서 준의 앞에 나타난 검은 개 두 마리 역시 그러한 순간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렇게 단 한 가지 사건을 통해, 평범하고 납득할 만한 일에서 놓칠 수도 있었던 것을 표현할 수단을 찾게 된다. 그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억하는 사유의 순간들도 매혹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너무도 정확하고 아름다운 단어와 문장들, 그리고 평범한 순간들 조차 매우 치밀하게 잘 짜인 드라마로 만들어내는 이언 매큐언의 마법이 멋진 작품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중심에, 그 내면의 존재에 가 닿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언 매큐언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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