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뼈에 사무쳐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나에게는 아무도
없다. 안타깝게도 그건 상상이
아니다. 가공을 거치지
않은 100퍼센트 천연 유기농
현실이다. 셔먼 선생님이
있지만 선생님은 시간제로 돈을 받는다. 아버지가 있지만 나한테 눈곱만큼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이 나라의 반대편으로 이사 가지 않았을 거다. 엄마가 있지만 오늘 저녁에는, 어제 저녁에도, 그 전날 저녁에도 부재중이다. 농담이 아니라 곰곰이 따져보면 누가
있을까?
내 앞의 컴퓨터 화면 위에는 이름
하나뿐이다. 에번
핸슨. 나다. 나에게는
그것뿐이다.
p.40
뮤지컬 팬들에게는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겠지만,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표를 구하기 힘든 작품 중 하나는 바로
<디어 에반 한센(Dear Evan Hansen)>이다.
2017년 브로드웨이 최고의 화제작으로 제71회 토니상 9개 부문 노미네이트, 최고의 뮤지컬상을 포함 6개 부문 수상했고, 2018 그래미 어워드에서도
수상했다.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의 작사/작곡가로 잘
알려진 Benj Pasek과 Justin Paul이 작사와 작곡을, 뮤지컬 <렌트>와 <넥스트
투 노멀>의 연출을
맡았던 Michael Greif이 연출로 참여한 뮤지컬이다. 사회 불안 장애를 앓는 학생이 스스로에게 쓴 편지로 인해 친구가 자살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는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보다 책이나 소설을 훨씬 더 잘 이해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킥젝 선생님의 비평적인 분석 전략을 방금 전에 목격한 실제 행동에 아무
문제없이 적용할 수 있다. 우리의 아름답고 지당하신 여주인공 조이 머피가 점심을 쓰레기통에 버린 건 화자에 대한 평가를 상징하는 행동이다. 조이 머피의 눈에 에번 핸슨은 쓰레기인
것이다.
p.145
고등학생인 에번 핸슨은 사회불안장애를
겪고 있다. 주기적으로 심리
치료를 받고 있으며, 항우울제를 먹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그에겐 너무도 어렵기만 하다.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아빠는 꽤 먼 곳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셨으며, 엄마는 병원 일과 수업 때문에 너무 바빠서 집에
거의 없다. 심리 치료사는
에번 핸슨에게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숙제를
내주었었다. 새 학기 첫날도
어깂 없이 투명인간처럼 보내고, 혼자 컴퓨터실에서 숙제인 편지를 쓰고 있는데,
학교의 문제아 코너가 나타나 그 편지를 가로채버린다. 편지를 돌려받지 못해 불안한 에번은 코너가 자신의
편지를 사람들에게 유포해서 웃음거리가 되어버릴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
하지만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고, 어떠한 폭탄도 터지지 않은 채 하루, 이틀이 지나간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전해지는 코너의 자살
소식, 게다가 코너의 가족들은
그의 옷에서 발견된 에번의 편지를 유서로 오해하게 된다.
에번 핸슨에게,로 시작해서 너의 가장 가깝고 가장 소중한 친구인 내가,로 끝나는 그 편지를 코너가 에번에게 쓴 편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졸지에
에번은 코너의 절친이 되어 버리고, 작은 오해로 시작된 그 일은 점점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가족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에번은 자신이 코너의 비밀친구였다는 거짓말을 시작하게 되는데,
거짓말은 거듭될 수록 점점 몸집이 불어나 상황은 점점 더 제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외로움으로 사무치던 한
사람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은 유쾌하고,
따뜻하고,
뭉클하게 펼쳐진다.
사회불안장애를 겪는 한 아이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일에 휘말려 조금씩 사회성을 갖게 되는
과정을 통해 어느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또다시 기본값으로 설정된 반응을
보인다. 장난치는
거겠지. 내 앞에서 까부는
거겠지. 하지만 나의 직감은
아니라고 한다. 그가 한
얘기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런
사건은 벌어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얘기에 담긴 정신과 그의 전달 방식은 묘하게도 진짜처럼 느껴졌다. 그가 진심을 담아서 하는 얘기 같았다. p.233
사실 뮤지컬 <디어 에반 한센(Dear Evan Hansen)>이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음악 때문이었다. 뮤지컬 넘버들이 굉장히 현대적이면서도 대중적이라,
한번 들으면 그 멜로디가 계속 귀에 남는다.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의 곡을 만들었던 작가, 작곡가의 음악이라 더욱
매력적이고, 가사들이 모두
희망적이고, 힘을 주는
메세지를 안고 있어 듣고 있으면 정말 심장이 쿵쿵 뛰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 작품은 곧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인데, 뮤지컬 넘버들이
너무 좋아서 제2의 <라라랜드>가
되지 않을까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에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는 소설이 나올 예정이라 가제본으로 미리 만나보게 되었는데, 너무도 뭉클하고, 따뜻하고,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음악으로만 들었던 내용을 소설을 통해서 깊이 있게
알게 되니,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듣는 뮤지컬 넘버들의 감동은 그야말로 두 배가 되었다.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핫한 뮤지컬이라 언젠가는 국내에서도 공연이 될 것 같은데,
그 전에 소설과 영화로 먼저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