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뇌
케빈 데이비스 지음, 이로운 옮김 / 실레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어떻게 원래 정상적이고 비폭력적이던 사람이 그렇게 끔찍한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머리에 가해진 충격, 뇌손상, 또는 기타 신경학적 이상이 그렇게 평소 성격과 전혀 다르고 폭력적인 행동을 촉발할 수 있을까? 그 가족에게 닥친 더 무서운 사실은 데이비드가 살인 미수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뇌가 손상된 것이라면 책임은 어디까지 져야 할까? 데이비드는 중대한 흉악범죄를 저질렀고 법의 잣대로는 기소 당해 마땅했다.   p.89

1991년 뉴욕에서 광고업에 종사하다 은퇴한 65세의 남성인 와인스타인이 말다툼 중에 아내를 살해했다. 전과기록이나 폭력 행동 이력은 전혀 없었다. 원래 평범하고 차분하고 침착하며 이성적인 사람이었던 그가, 어느 날 아내의 목을 조른 후 12층 높이의 아파트 창문으로 아내를 내던질 수 있는 걸까? 변호인은 와인스타인이 뇌에 있는 낭종 때문에 순간적으로 정신이상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미국 최초로 재판부가 피고인의 유무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PET(양전자 방사 단층 촬영) 영상을 배심원들에게 보여주도록 허락한 사건이었다. 뇌를 다치면 온화하던 사람도 폭력적인 성향으로 바뀔 수 있는 걸까? 과연 그는 뇌 이상으로 인해 아내를 살해하는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된 걸까?

범죄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여러 해 동안 범죄 사건을 다루면서,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온갖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저지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손상을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범행을 학대받 은 어린 시절, 가난, 알코올, 약물 남용 또는 나쁜 친구들 탓으로 돌리는 것을 보아왔다. 그들 중 일부는 이해와 동정을 얻어 징역 대신 치료를 받게 되고, 또 일부는 과부하 걸린 형사사법제도하에서 비웃음 당하고 만다. 그는 뇌이상 항변이 일리가 있는지, 법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죄가 더 가벼운지에 대해 알고 싶어 신경과학과 법의 세계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관점을 지지해줄 전문가를 찾아냅니다. 그 전문가의 역할은 의뢰인의 입장을 열심히 변호해주는 것이고요. 진실이 무엇인지는 상관없어지는 것이죠." 메이버그의 말이다. "신경과학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동일한 자료를 놓고 두 사람이 각각 다르게 해석할 수 있어요. 실험을 되풀이해서 동일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과학자들이 실험을 약간 변경할 수도 있거든요."   p.168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악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당연히 그 원인을 궁금해한다. 폭력이라고는 한 번도 저지른 적이 없던 남자가 어느 날 아내를 살해하고, 유능한 공사감독관이었던 남자는 뇌를 다친 후 폭력적이며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다정다감했던 가장은 계단에서 넘어진 이후 아내와 딸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운동 중 뇌진탕을 자주 경험했던 미식축구 스타가 끔찍한 가정폭력을 저지른다. 이들의 갑작스런 범죄 행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며, 뇌 손상과 이들의 행동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 책은 면밀한 관찰과 취재, 과학적 증명, 심리학, 사회학, 뇌과학, 신경과학을 넘나드는 심층 연구를 통해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진짜 이유를 밝혀내고 있다. 물론 법정에 선 '범죄자의 뇌'라는 테마는 실제로 현대 법률에서 가장 뜨겁고도 격렬한 논쟁의 주제이기도 해서, 책을 읽는 내내 명쾌하게 어느 한쪽으로 정답을 내릴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사실 뇌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법에서 형을 면해줄 수 있다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좀 더 합리적인 사법제도, 범죄자에게 책임을 지우면서도 범죄자의 생각을 이해해볼 여지가 있는 제도를 만들고자 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범죄를 저지르게 된 이유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병이 있는 사람이 정신이 건강한 사람과 반드시 같은 책임을 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과 이 불행한 범법자들은 이성적이거나 자발적인 선택을 할 능력이 부족하므로 어느 정도의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신이상이 있다고 해서 범죄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거나, 정상 참작이 되어 죄에 합당한 형벌이 아니라 치료를 받는 등의 다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 쉽게 수긍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악용하는 범죄자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고, 정신이상에 대한 의학적 해석과 법적 입장의 차이로 인한 공방도 있고, 무엇보다 시작이 어쨌든 결과적으로 중대한 흉악범죄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했으니 법의 잣대로 기소 당해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웬만한 스릴러 소설보다도 더 흥미진진한 최고의 논픽션'이라는 마이클 코넬리의 추천평처럼 전혀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게, 소설처럼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범죄자의 뇌, 그리고 법정에서의 신경과학이라는 이슈는 모두 함께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이 책이 그 속에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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