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보이
데이비드 셰프 지음, 황소연 옮김 / 시공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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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닉을 기다려왔다. 닉의 귀가 시간이 지나면 녀석의 차 엔진 소리를 기다렸다. 차가 진입로에 들어와 멈추고 엔진이 웅웅거리다 멈추기를... 어느 때는 전화벨 소리를 기다리기도 했다. “안녕, 아빠. 뭐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닉일 수도 있었고, “셰프 씨, 우리가 댁의 아드님을 데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찰일 수도 있었다. 닉이 늦도록 귀가하지 않거나 전화를 하지 않을 때마다 나는 재앙을 떠올렸다. 닉이 죽었다고. 늘 닉이 죽는 생각을 했다.    p.20~21

닉은 야무지고 똑똑하고, 타인에게 싹싹한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렇게 대단히 영특하고 활달한, 평범한 아이였던 닉은 대체 어떻게 메스에 중독된 것일까. 닉은 10년 이상 간헐적으로 약물을 복용해왔다. 메스는 가장 많이 남용되고 중독성이 강한 마약으로, 그 위력은 헤로인과 코카인을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하다고 한다. 닉의 아버지는 아들이 망가지는 걸 막으려고, 아들을 구하기 위해, 돕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아들의 메스 중독을 막으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아버지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약물 중독을 통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티브 카렐,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영화 [뷰티풀 보이] 원작 에세이가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마약 중독으로 평범했던 가정이, 부모가, 형제자매가 얼마나 쉽고 빠르게 붕괴되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셰프는 부모가 해결해줄 수 없는 절망의 세계로 가버린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진솔하게 풀어낸다. 약물중독 문제를 중독자와 그에게 중독되어가는 또 다른 중독자, 가족의 입장에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들 가족의 이야기는 특별하기도 하지만 매우 보편적이기도 하다. 모든 중독자의 이야기에는 누구나 공감할 면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내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는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었나? 알아넌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책임을 통감했다. 그 길고 장황한 가정법을 반복했다. 만약에 내가 한계를 더 엄히 설정했더라면. 만약에 내가 더 일관성이 있었더라면. 만약에 내가 닉을 더 잘 보호했더라면. 만약에 내가 마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닉의 엄마와 내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이혼 후 우리가 같은 도시에 살았더라면.  p.267

자식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대부분의 부모는 죄책감을 가지고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이 내 잘못은 아니었는지, 혹시 내가 내 자식을 완전히 망쳐버린 것은 아닌지, 만약에 내가 좀더 잘했더라면 이러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건 아닌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끔찍한 폭력이 벌어졌다는 뉴스가 들려오면 사람들은 생각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어떻게 했길래 저런 사람으로 자라났을까, 부모가 무관심하고, 무책임하고, 어쩌면 학대를 한 것은 아닐까. 따뜻한 환경에서 사랑으로 키운 아이는 절대 저런 짓을 하지 않았을 텐데 라고. 자식이 약물 중독이 되었다고 하면 아마도 누구나 이와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다. 가정 환경이 대체 어떠했길래, 부모는 대체 아이가 저 지경이 되도록 뭘 한 거냐고 말이다. 하지만,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 받고 화목하게 지냈다고 하더라도 이런 비극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누구의 자식도 예외일 수 없다. 누구나 이 작품 속 닉 처럼 될 수 있다.

어떤 부모든 자식에게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랄 것이다. 내 아이들이 항상 행복하게, 안전하게 지내기만을 꿈꾸며, 자신의 모든 사랑과 노력과 시간을 쏟아 붓는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방식 중에 최선의 방법으로 아이를 기른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아이는 부모가 알 수 없는 존재로 성장해버릴 수밖에 없다. 

 

나는 닉의 의기소침함, 분노, 공허함, 닉의 후퇴, 닉의 혼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너는 누구니?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지만,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끌어 안고 살아야 한다는 굴레와도 같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수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매 순간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이를 망친 걸까? 내가 너무 오냐오냐했을까? 내 관심이 부족했을까? 관심이 너무 지나쳤을까? 만약에 우리가 시골로 이사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후회는 계속된다. 그리고 자신은 물론, 다른 가족들의 삶이 비극으로 치닫는 동안에도 아들의 추락을 방관하지 않는다. 아이는 수없이 거짓말을 하고 재발을 반복하지만 그때마다 저자는 쓰러진 자식을 일으켜 세우고 오직 믿음으로 기다려준다. 그리하여 '아들의 마약 중독을 함께한 아버지가 들려주는 구원의 여정'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고, 뭉클하고, 가슴 아프게 펼쳐진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다음 페이지에서 갑작스럽게 닉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건 아닐까 하는 최악의 비극을 떠올렸다. 아마 저자의 삶도 매 순간 그러했을 것이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될 까봐 불안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현재 닉은 팔 년째 약을 끊고 지내고 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간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가족들은 그 시간과, 닉이 서른여섯 살이란 나이가 기적처럼 느껴진다고. 아직 이들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부모이자, 누군가의 자식이다. 그러므로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있는, 최악의 상황을 겪었지만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될 수도,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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