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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 a love letter to my city, my soul, my base
유현준 지음 / 와이즈베리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공간을 감정과 연관시켜
기억한다. 다양한 공간과 그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한의원 약초 서랍처럼 여러 개 있다.
디자인을 할 때는 내가 그 공간에서 어떠한 느낌을 받기 원하는지를 먼저 생각한 후 그 서랍에서
필요한 공간을 찾아 대입하는 식으로 작업한다.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기억들이 나를 먹고 살게 한다. p.87
사람은 일생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책, 영화, 음악, 미술 등
예술도 한 사람을 이루는 모태가 된다. 그리고 시간을 보낸 공간도 그 사람을 만든다.
이 책은 건축가 유현준을 만든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인간으로서, 건축가로서 자신을 성장하게 한 도시의 요소와
장소들을 이 책을 통해서 소개한다. 생애 첫 기억인 ‘마루’에서
시작해, 자신이 태어난 동네인
구의동에서 본격적으로 ‘별자리
여행’을
시작한다. 엄마가 차고를
개조해 운영했던 피아노 학원, 엄마가 운영했던 파랑새 유치원,
가족과 함께 자주 갔었던 집 뒷동산인 아차산의 바위산 등성이, 시장을 지나 골목길 어귀에 들어서면 있던 동네
가게 '도매식품', 초등학교 스쿨버스의 맨 뒤에 있던 구석 자리,
친구들과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를 했던 골목길... 저자는 말한다 골목길은 경이로운 공간이라고. 골목길은 운동장이 되기도
하고, 놀이의 편을 나누면서
협상을 배우는 장소였고, 구슬치기를 하며 거래를 배우는 장소이자 경영을 배우는 장소였다고.
지금의 어린아이들은 이러한 사회적 지혜를 배울 공간이나 시간이 있기나 한지 걱정스럽다는 그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지금은
도시에서 거의 사라진 공간이지만, 나에게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조금은 있는 곳이 바로 골목길이었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별자리란 나를
형성한 공간, 지금 나에게
필요한 공간 그리고 인생에서 희미하지만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공간을 의미한다.
연애하기 좋은 공간,
혼자 있기 좋은 공간,
일하는 공간,
일상적으로 통과하면서도 그 공간이 갖는 진가가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 도시에 숨겨진 보석 같은 공간 등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도시가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도 든다.
모두에겐 각자의 장소가 있을 것이다. 힙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나에게만 특별하고 애틋한 그런 곳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과 지금의 일상을
만드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본다.
모든 길은 다
통한다. 홍대에서 한남동으로
가야 한다고 치자. 가는 길은
수없이 많다. 강변북로를 타고
가도 되고, 삼각지와 이태원을
거쳐서 가도 되고, 남산순환도로를 통해서 가도 된다.
신촌오거리를 통해서 가다가 길이 막히면 아현동사거리에서 우회전해 공덕동을 통해서 돌아가도
된다. 길을 바꿔 가도
목적지는 같다. 다만 경치만
달라질 뿐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계획했던 길이
막히면 다른 길로 가면 된다. 그리고 그것이 모여서 새로운 풍경이 되는 것이다. p.401
이 책에 소개된 건축가 유현준의 눈에만
반짝거리는 공간들은 한 개인의 역사이자, 도시에 보내는 러브레터이고, 여행 가이드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특별한 국내 여행지를 추천해주는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리스 산토리니 대신 부산의
감천마을을, 스위스 대신
산정호수를, 타임스퀘어와
센트럴파크 대신 코엑스몰의 별마당 도서관을 추천한다.
감천마을은 산토리니와 공간 구성이 닮았고, 색상과 형태가 더 다양한, 컬러의 도시이다. 우리나라엔 호수가 많지 않은데, 특이하게 커다란 호수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 바로
산정호수이다. 별마당 도서관은
쇼핑몰의 복도가 모여드는 교차점에 자리해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는 공간 구조인데다, 쇼핑몰에서 유일하게 자연 채광이 들어오는 공간이다. 공짜로 앉아서 책이라는 콘텐츠를 즐기며 햇빛까지
볼 수 있어 특별한 공간이라는 거다. 이러한 공간들에 대한 글을 읽다 보니,
나와 도시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미처 몰랐지만 너무도 멋진 공간이 도시 속에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에서는 여동생과 한
방을 썼다. 어린이 책상이 두
개있었고, 이층 침대가
있었고, 작은 옷장과 네
칸짜리 책장이 하나 있었다. 그러한 구조로 거의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그 방을 사용했었는데,
방에 하나 있던 책장만은 오롯하게 내 차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겨우 책장 네 칸에 책을 얼마나
넣겠냐 싶지만, 당시에는 나의
보물 같은 장소였다. 대학을
가고 직장에 다니면서 독립을 해서는 그 네 칸짜리 책장이 두 개로 늘어났다가,
결혼 후 신혼집에서는 나만의 서재가 생겼다. 벽 네 면을 전부 책장으로 채우는 게 어릴 때부터
소원이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가장 많은 삶을 빚는 공간이니,
그곳이 좋아야 그 사람의 살의 질도 좋아진다는 저자의 말처럼, 감사하게도 나에겐 지금 그런 공간이 생긴
것이다. 이 책 덕분에 나에게
소중한 공간들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심코 스쳐 지나갔던 도시의 공간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살면서 모든 순간이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순간순간이 아주 가끔 아름답고,
또 아주 가끔 행복할 테니,
우리는 그 순간들을 이어서 별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나도 머릿속으로 별자리를
되짚어본다. 나를 형성한
공간, 내가 지나온
공간,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공간은 어디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