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 앗코짱 시리즈 2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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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 천재지변이 일어나 출근을 못 했으면 좋겠다. 아니, 조금이라도 회사에 늦게 도착하게 지하철이 연착하는 것도 괜찮다. 그러잖아도 이 노선은 출발 할 때 뛰어드는 사람이 많아서 운행시간보다 늦어지는 일이 잦았다. 모르는 누군가가 죽어도 상관없으니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될 정당한 이유가 생기길 바랐다. 그 바람이 최악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럼 차라리 자기가 선로에 뛰어들면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상사인 다카하시에게 야단맞지 않아도 된다.    p.11

회사에 가고 싶지 않다. 방금 출근했는데 퇴근하고 싶다. 갑자기 교통사고라도 나서 며칠 쉬면 좋겠다. 등등.. 이런 생각들 한번쯤 해보지 않은 직장인이 있을까. 27살 직장여성 아케미 역시 그랬다. 마지막 휴일이 언제였는지 이제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지쳐 있었다. 동기들은 몸과 마음을 다치고 하나 둘 그만두었고, 그 땜빵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입사 5년차가 된 참이었다.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고, 회사에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잉, 하는 요란한 기계음이 나서 돌아보니 주스 판매대의 키 큰 여자가 초록색 액체를 믹서로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주스판매대 안쪽에 선 체격 큰 여성이 아케미를 부른다. 그리고는 너무도 당당한 모습으로 걸쭉한 녹색 액체 컵을 내민다.

"시금치랑 고마쓰나랑 사과 스무디예요. 무료 캠페인 중입니다. 마셔 봐요."

지하철이 도착한다는 방송이 울려 퍼지고, 다급한 마음과 얼떨결에 아케미는 음료를 마시는데, 쓸 뿐만 아니라 아린맛과 풋내에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지고 만다. 그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이 정체모를 음료를 마셔 보라는 강압적인 상황은 반복되지만 아케미는 저항 한 번 못한다. 그렇게 화요일에는 당근과 망고 스무디, 수요일에는 적양배추와 거봉 스무디, 목요일에는 시금치, 셀러리, 멜론이 들어간 스무디 등을 반 강제로 먹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앗코짱의 반복되는 간섭을 통해서 평소 상사의 폭압적인 태도에도 성희롱에도 저항 한 번하지 못하며 자신의 감정을 죽여왔던 아케미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게 뭐야...."

도코는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신음했다. 두 사람의 시선을 느꼈지만, 이제 아무래도 좋다.

"모처럼의 휴일인데 어째서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거야."

놀랍게도 눅가가 뜨거워졌다.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몇몇 과거가 머리를 스치며, 이대로 웅크리고 싶어졌다. 이래서야 옛날과 다를 게 없다.    p.157

일본에서 출간 즉시 10만 부를 돌파했고, 출간 다음해 NHK의 드라마로 제작되는 등 앗코짱 신드롬을 일으켰던 '앗코짱 시리즈' 그 두 번째 작품이다. 전편이었던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에서 앗코짱은 소심한 파견직원 미치코와 일주일 점심 바꾸기를 통해 그녀의 성장을 도왔었다. 평소 함께 외식할 친구도 없고, 돈에 여유가 있던 것도 아니어서 제대로 된 외식을 거의 해본 적 없었던 미치코는 앗코짱이 남긴 메모와 지폐를 들고 식당을 찾아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음식을 먹는 경험을 했다. 언제나 수동적으로 타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던 삶의 태도가 조금씩 적극적으로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은 소소하지만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작품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에서는 아케미가 미치코의 역할을 하게 된다. 게다가 한층 성장한 미치코도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해 반갑기도 했다.

'소설계의 셰프'라 불리는 작가 유즈키 아사코 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자주 등장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의 다양한 채소와 과일로 만든 색색깔의 스무디들과 두번째 에피소드에서 출장 티 서비스를 통해서 매력적인 애프터눈 티세트를 보여준다. 월요일에는 홍차 얼그레이와 쇼트 브레드, 화요일에는 홍차 다르질링과 오이 샌드위치, 수요일에는 우바 홍차에 우유를 넣은 밀크티와 빅토리아 샌드위치 케이크, 목요일에는 홍차 아삼과 스콘, 금요일에는 샴페인과 크리스마스 푸딩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해당 음식들이 페이지마다 삽입되어 있어 눈이 호강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누구에게나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매번 설레이고,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만 두고 싶은 직장을 참고 다니고, 지루한 학교 생활을 졸업을 위해 이어가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육아와 집안일 전쟁 속에서 매일을 버텨내고 있다. 이 작품은 그렇게 일상을 견디는 사람들을 향한 응원 같은 책이다. 언제나 황당무계하고 꿈을 꾸는 것 같은 말만 하며, 고압적인 모습으로 자신감 넘치는 앗코짱이 세상에 큰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대신 해야 할 말을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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