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돼서, 라는 말로 남의 사생활에 쑥 끼어드는
사람들.
걱정이 돼서, 라는 말로 남의 상처에 소금 뿌리는
사람들.
걱정이 돼서, 라는 말로 심란한 속을 더 뒤집어놓는
사람들.
나는 이제 “네가 걱정이 돼서”라는 핑계로 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을
거부하려 한다.
p.20
우리는 매일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회사에서, 집에서, 마트에서, 공원에서,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럴 때
소심해서 세상에 대들 용기도 없고, 억울해도 잘 따지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이들을 위한 팁 같은 게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함부로 내 인생을 흔드는 사람에게 이제 너는
노땡큐! 라고 한마디 날리기도
하고, 헤어지길 다행이지
싶었던 전남친의 연락에 쿨하게 나 좀 삭제해줄래?
라고 미련 없이 답문을 보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책은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친한 친구] [2시의 데이트] [박준형, 정경미의 2시 만세]로 20년 동안 작가로 일해온 이윤용의 세 번째
에세이이다. 저자는
말한다. 소심해서 세상에 지를
용기 없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상처 준 사람들을 향한 내 감정을 아무도 모르게 삭제해버리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생각을 버릴 수 있도록
연습시켜주는 자기계발서나, 자신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련하도록 방법을 제시하는 훈련서는 아니라고. 그저 앞에서는 아무 말 못해도 뒤돌아 혀를 내미는 메롱 같은
거라고. 그렇게 작은 메롱과
꼬물거림으로 자신의 감정을 보호하며 살고 싶다는 저자의 말에,
책을 읽기도 전 서문부터 마음이 활짝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어깨가 뭉쳐 물리치료를 받을
때, 제가
물었죠.
"제가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 근육이 놀랐을까요?"
그때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열심히 사느라 그랬겠죠. 잘못은요,
뭘." p.109
오랜 만에 연락 온 친구가 돈 좀
있냐고, 몇 백만 빌려줄 수
있냐고 묻는다. 돈이 없어서
미안하다는 저자에게, 넌 혼자
사는 애가 그 돈도 없냐며 오히려 타박을 하는 친구.
순간,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저자는 미안하다고 얘길 했다. 그리고 6개월쯤 지났을 때 그녀에게 또 돈 좀 있냐고
연락이 온다. 그런데 솔직하게
돈이 없다고 하면 또 뭐라고 할지 걱정이 되어 돈이 없는 이유를 만들고 있었던 거다. 생전 연락 한번 없다가 불쑥 문자로 돈을 꿔달라는 친구. 돈이 없다고 하면 오히려 타박하는 그녀에게 왜
변명거리를 찾고 있는 것인가. '나보다 내 돈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이런 친구'
삭제해도 된다는 것이 바로 이 책에서 알려주는 '인생에 독이 되는 관계, 타인에게 쉽게 상처 주는 사람 티 안 나게
정리하는 법'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부지런할 필요는
없다. 나의 타고난 게으름은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쉬는 날
하루 종일 빈둥거려도 자책하지 않고,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뜀박질하는 자신을 손가락질 하지 않는 뻔뻔함에는 삭제 대신 저장 버튼을 눌러본다. 아무리 각박해도 유머만은 평생 잃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긍정모드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녀처럼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을 체에 한번 걸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이 된 사람과 감정들을
삭제하고, 힘이 된 사람과 그
마음들을 보관함에 담아두는 거다. 마음의 휴지통을 비우고, 한결 단단해진 기분으로 내일을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