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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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육체로 내 삶을 평생 경험한다. 성실하게 돈을 벌 것이며, 지난해 퇴직한 아내와 함께 딸 둘을 키우면서 아이들의 행복과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다. 나는 손에 잡히는 소소한 행복을 자주 맛보며 살고 싶다. 그런 기쁨을 주위에 나눠주고도 싶다. 하지만 늘 그렇게 살 수만은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내 속에 열정이 숨어 있는 것을 안다. 가끔은 달궈진 마음을 온통 쏟아 부을 그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을. 그럴 때 나는 내 몸 이상이며 내 마음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을.   p.38

생태보호연구원으로 일하는 평범한 샐러리맨 진우는 어느 날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선발 공고를 발견하게 된다. 오래 전부터 우주를 꿈꿔왔던 진우는 우주인 선발에 지원하고 다섯 번의 관문 중에 3차에 통과한다. 4차 테스트를 하루 앞두고 진우는 팀장과의 면담에서 이번 연구 평가에서 그에게 미달이라는 평점을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납득할 수 없다며 성과를 다시 점검해달라고 언성을 높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군항공학교에서의 스케줄은 닷새 동안 그곳에서 먹고 자며 우주복에 싸일 몸의 모든 것을 검사하는 과정이다. 대뇌 소뇌, 각막 수정체, 고막 달팽이관, 치아 목젖, 목뼈 척추, 췌장 비장, 소장 대장... 이 모든 걸 감싸주는 피부와 정신 상태까지도... 그 모든 것을 검사하는 시간 동안 몸이 견뎌내야만 테스트에 통과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우주를 꿈꾸던 한 샐러리맨 연구원이 우주인에 도전하는 이야기로,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이 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의 도전과 경쟁 그리고 우정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한 나라에서 뭐든 최초가 되려면 여러 능력이 필요하다. 용기나 돌파력 같은 것도. 지식보다는 지혜가 중요하고 지혜보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 이진우와 대단한 스펙을 가지고 있는 경쟁자들은 이러한 희박한 확률을 뚫고 우주인 후보에 선발이 될 것인가. 과연 누가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될 것인가.

 

 

사실은 여기 오지 않고 인생을 다르게 살 수도 있었는데.... 훨씬 평범하게. 축구하고 등산 가고 연구하고 딸애들 데리고 꽃놀이에 단풍 구경 다니고. 모스크바는 돈 모아서 구경 올 수도 있었는데. 아버지 모시고, 가가린센터도 하루 관광 코스로 넣어서. 하지만 이것은 내가 결정한 일이지 않는가.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는 내가 철저하게 혼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p.251

이 작품 속에서 '일상의 중력'을 벗어나려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우주인'이라는 실체를 잡기 어려운 꿈같은 목표를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낯선 풍경들을 보여 준다. 우주에서 중력이 없어지고 기압도 낮아지면 몸 속에 있는 가스가 몸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만약 썩은 치아가 있다면 그 틈새로도 가스가 나와 통증 때문에 우주에서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신체 검사 과정에서는 어금니 하나하나까지 검사를 해야만 한다. 우주에 다녀오면 평소보다 저혈압이 돼서 어지럽게 마련인데, 그걸 잘 견디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혈압을 높였다가 갑자기 떨어뜨리는 테스트 과정도 있다. 혈압이 170이 되었다가 갑자기 70까지 떨어지게 되었을 때의 현기증과 메쓰꺼움으로 인해 실신하는 지원자들이 속출한다. 이렇게 기절할 만큼의 물리적인 상황 속에서 그저 정신력으로 버텨야만 하는 거라는 걸 일반인들은 알 수가 없다. 거기다 이들은 우주로 가려고 더 높은 관문을 지날수록 이직이나 휴직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4차 테스트 후 열 명이 러시아로 가서 5차를 치르고, 넷이 남으면 한 해 동안 정식교육을 받게 되는데, 정작 우주로 향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명이다.

작가는 우주인 후보들과 함께별의 도시라고 불리는 즈뵤즈드니 고로도크까지 동행하여 우주인 선발 경쟁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 덕분에 이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우주인 선발 과정과 훈련 과정은 굉장히 리얼하고, 현장감있다. 일반인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디테일한 묘사들이 매우 현실감 있게 전달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작가가 13년 동안 취재하고, 무려 35번의 개고를 거친 이야기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이 꿈을 쫓다가 수렁에 빠지고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대로, 이 작품은 세상의 모든 평범한 샐러리맨들에게 작은 울림을 남겨줄 것 같다. 누구나 한때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어른이 되어 가면서 현실적으로 꿈을 이룰 수 있을 만큼의 확률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마음을 접고 한때 뭔가를 동경했다는 사실마저 차츰 잊어 버리고 산다. 하지만, 일상의 중력에서 벗어나고 싶을 만큼의 갈망을 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지금의 현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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