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스케는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있는 곳이 그 환상의 섬이 아닌 걸까?
뉴도자키의 깎아지른 절벽에 뚫린 석굴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는, 동네 사람들도 모르는
수수께끼의 섬이 아니던가? 깊은 안개에 덮여 바다에서도 육지에서도 보이지 않고 불가사의한 해류가 주위를 지키고 있는, 배도 다가가지 않고 새들도 오가지 않는 외딴섬이
아닌가? 모모스케는 현실
감각을 잃어버렸다.
P.63~64
다다미 열 장 정도 되는 방에 젊은
사내 네 명이 얼굴을 맞대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밥상이 나와 있지도 않고 술 그릇이 눈에 띄지도 않는, 격식을 차린 자리 같지는 않지만 스스럼없다는
느낌도 없는, 참으로 희한한
회합이다. 이들 네 명은 한문
서적에 정통한 도쿄 경시청의 순사인 겐노신,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괴짜 요지로, 에도 막부 중신의 아들로 서양에도 다녀온 멋쟁이지만 일하지 않고 빈둥대는
쇼마, 검을 배운 호걸로 마을
도장을 하며 순사들을 상대로 검술을 가르치는 소베이다.
이들은 모두 오래된 이야기,
기괴한 전설 등에 관심이 많아 누군가에게 들은 진기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던
참이었다. 이번에 요지로가
붉은 얼굴 에비스, 가라앉은
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겐노신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지만,
쇼마와 소베는 문명개화 시대에 그런 비합리적인 이야기는 있을 수 없다며 강하게
부정했다. 이들은 결국
야겐보리의 은거 영감에서 의견을 구해 보기로 하고,
그를 찾아 간다.
야겐보리의 은거 영감이란, 여든하고도 몇 살이 된 학처럼 홀쭉하게 여위고
피부가 흰 늙은이이다. 어디를
어떻게 봐도 상민처럼 보이는, 신분이나 직분이 있어 보이지 않는 인물이었지만 오래 전 번주의 총애를 받아 번에서 공로금까지 받았다고 한다. 요지로가 그 돈을 매달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던
인연으로 현재까지 교류를 하게 된 것이다. 노인은 매우 박식했고, 기묘하기 짝이 없는 체험담을 아주 많이 갖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불신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요지로에게 노인이 들려주는 에도 시절 이야기는
정겹고 편안했으며, 겐노신은
순사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진기한 이야기나 괴담 종류를 별나게 좋아했기에 노인이 들려주는 각 지방의 괴이한 이야기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생김새나 생업과
어울리지 않는 합리주의자인 소베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노인과 의견을 나누는 것이 즐거웠고, 약간 서양 물이 든 쇼마는 노인과 같이 사는 먼 친척 처자에게 마음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들 네
명은 소문에 대한 진위나 기이한 전설에 대해 상담을 하기 위해 노인을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그 노인은 바로 기존 항설백물어 시리즈에서 괴담을 탐문하고 수집했던
모모스케이다. 귀신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인물로 언젠가 백 가지 괴담을 모아 책으로 엮어낼 생각으로 일본 각지를 여행했던 그가 사십 여 년의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것이다.
"마음속에 켕기는 구석이 있는 사람에게는 얼굴이 보였다......"
"맞습니다.
얼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본 겁니다." 요지로가 대답했다.
보이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다. 거기서 무엇을 보는지는 보는 사람 마음에
달렸다. 이도 저도 다 노인이
이야기한 셋쓰의 괴이한 불 이야기에서 얻은 교훈이다. P.290
'항설백물어'
시리즈를 기다려온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항설백물어>가
2009년,
<속 항설백물어>가
2011년에 나왔었으니 무려
7년 만에 만나게 되는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항성백물어> 시리즈는 일본 에도시대 괴담집에 등장하는
설화를 모티프로 인간의 슬프고도 추한 본성을 다채롭게 해석해낸 작품이다.
이번에 출간된
<후 항설백물어>는
<항설백물어>,
<속 항설백물어>에 이은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자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원고지 3000여
매 분량의 작품이라 상하권 두 권으로 나누어 출간되었다.
상권에는 하룻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섬에 얽힌 이야기인 '붉은 가오리', 원인 모를 작은 불소동이 벌어지면서 괴이한 불을
둘러싼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하늘불', 그리고
뱀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집안의 무덤 위 사당에서 독사에 물려 사람이 죽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에 얽힌 전설을 들려주는 '상처 입은 뱀' 세 편이 실려 있다. 제 발로 각 지방을 두루 다니며 기기묘묘한 일을
찾아 다니는 삶을 살았던 모모스케가 지금은 볼품없이 쪼그라들어서 마음 좋은 할아버지처럼 등장하니 어쩐지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가 들려주는 고금의
괴담과 기담, 동서의 진기한
이야기들은 전작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극중 노인은 '무슨 일이든 세상 이치를 알지 못하고 그저 그냥
이상하다, 희한하다 하면서
무서워한다면 괴담이 되겠지만, 이는 이러저러한 이치로 일어나는 일이다,
하고 설명할 수 있으면 더는 괴담이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인지
<항설백물어>
시리즈에 등장하는,
항간에 떠도는 기묘한 이야기들은 그저 괴담으로 그치지 않고 있다는 느낌도 들어 더욱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두툼한 페이지를 자랑했던
<속 항설백물어>에서
6편의 단편이 각각 한 편으로 완결되다가 각 이야기들이 미묘하게 얽히면서 모든 이야기가
클라이맥스로 연결되었던 놀라운 구성을 떠올려보자면,
이번 작품 역시 하권까지 함께 읽어야 이야기가 완결될 것 같다는 기분도
든다. 그래서 드디어
출간된 <후
항설백물어> 하권을 바로
이어서 읽어 보려고 한다. 고전 설화를 재해석한 전혀 새로운 미스터리를 만나보고 싶다면,
모두들 교고쿠 나츠히코의 특별한 세계로 함께 여행을 떠나 보시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