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하나의 사건이 되는, 다가오고 있는 모험이 되는 때가 있다.
그런 때 죽음은 운동을 일으키고, 흥미를 자극하고, 긴장감을 깨우고, 행동을 하게 하고, 마비를 일으킨다. 하지만 죽음이 더는 사건이 되지 못하는 그런 날이 온다. 그때 죽음은 그저 일정한 시간의
연장, 딱딱하고, 뻔하고, 특별한
것도 없고, 지루하고,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슬픔은 그 어떤 내러티브의 변증법보다도 강력하다.
p.60
가족의 예기치 못한 죽음, 그리고 그것이 촉발시킨 부채감과 죄책감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다.
남겨진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사실 모든 죽음은 갑작스럽다. 그러니 애초에 마음의 준비 같은 건
불가능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날들에 사실 끝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지만 잊고 싶어 하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그 사건은 늘 불시에 일어나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곁에 있어 왔던 부모님을 막연히 영원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아 온다. 그러다 부모님이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부모님도 언젠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게 되고, 막상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유한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애도의 과정은 나 역시 언젠가는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책은 20세기 후반 탁월한 프랑스의 지성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일기이다. 바르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다음 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노트를 사등분해서 만든 쪽지 위에 주로 잉크로, 때로는 연필로. 그는 이 쪽지들을 세상에 내놓지 않고 책상 위의
작은 상자에 모아두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삼 년이 못된 어느 날, 그는 길을 건너다 트럭에 치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치료를 거부했고, 한 달 뒤인
3월
26일에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공식적으로는 사고사였지만 어떤 이들은 자살이라 부른다. 그가 어머니를 잃은 이후 2년간 써내려간 지독하고, 집요한 상실의 슬픔이 담겨 있던 쪽지가 세상에
나온 건 이후 30년이
흐른 2009년
이었다. <애도
일기>는
국내에 2012년에 처음으로
소개되었고, 이번에 새로운
디자인을 입은 리커버 에디션으로 출간되었다.
텍스트를 재해석한 판형과 아름답고 처절한 슬픔의 감성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표지로 더욱 인상적인
느낌이 드는 작품이 되었다.
기록을 하는 건 기억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이렇게)
기록을 하는 건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다. 아무것도 자기를
이겨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 고통을.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없는
그런 것. p.123
롤랑 바르트는 현대 비평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비평가이자 사상가이면서 뛰어난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애도 일기>는 바르트의 책 가운데 독자 입장에서 아마도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너무도 감정적이고, 솔직하고, 인간적인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입장벽이 높은 바르트의 저작들과 다르게 쉽게 읽히지만, 그의 후기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그는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마망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 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p.78)'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게 마련이며, 따라서 우리는 늘 누군가를 잃고, 떠나 보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또 그는 해마다 열리는
상투적인 사교모임들을 보며 쓸쓸하고 울적하다.
'찌르고 들어오는 아픔.
나는 또 생각한다:
마망은 이제 없다,
그런데 이 바보 같은 삶은 계속된다. (p.137)' 인간이란 상실을 숙명으로 삼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기에, 우리에게 '애도'란 끊임없이
이야기되어야 할 테마이기도 하다.
'나를 갈가리 찢어지게 만들지만 동시에 다시 정신
차리게 만드는 것. 그건, 돌이킬 수
없다, 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p.100)'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은 얼마나 먹먹한 표현인가.
우리는 지나가 버린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 누군가에게 준 상처도, 지나고 하는 후회도, 한번 내뱉어 버린 말도, 어긋나 버린 시간도, 이미 엎질러진 실수도.. 절대 돌이킬 수 없다. 하물며 이번 생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강을 건너 죽음 너머로 가게 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진다고 말하는 이들은,
어쩌면 진정한 슬픔을 아직 만나지 못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
슬픔 그 자체를 지울 수는 없다. 바르트는
'이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결국 문학이 되고 말까 봐 두렵기 때문에. 혹은 내 말들이 문학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가 쓴 <애도 일기>는 슬픔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그럼에도 통속적이거나 신파적이지 않는, 놀라운 텍스트이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고 나서
매 순간 살아 있을 때 하지 못한 것들이 가슴에 사무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들은 그럴 때 글을 쓴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상황에서 그럴 수 없다면 이 작품을 읽으면 된다. 아마도 이 작품이 당신의 손을 잡아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