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아
오키타 밧카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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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만화가가 직접 그린 자전적 코믹 에세이'라는 문구 때문에, 게다가 귀여운 캐릭터와 가벼운 분위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할 때 아무런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저자가 아무리 상황을 코믹하게 그려놓고 있어도,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점점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작가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은 그러했지만, 이미 그 모든 시간을 거쳐 지금처럼 만화가로서 책을 내고, 일본 출판계 차트 역주행의 신화가 되었으니 과연 해피 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우울했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내가 그땐 그랬었지. 라는 식의 추억으로 치부하고 웃어 넘길만한 이야기가 결코 아니었다. 저자는 초등학교 때 학습장애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중학교 때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발달장애'라는 개념 자체가 익숙지 않은 시절이었기에 부모도, 선생님도, 그 누구도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그래서 전혀 배려 받지 못한 채 성장했다. 이 작품 속 니트로 역시 그렇다.

 

니트로는 잘 먹고, 잘 자고, 큰 병도 앓지 않았기에 모두들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모든 면에서 평범하고 건강한 여자아이로, 뭔가 다른 행동을 하더라도 아직 어린애니까 그렇겠지 라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조금 달랐다. 니트로에게는 타고난, '보이지 않는' 장애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부모도 선생님도 모른 채 니트로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별 것도 아닌데 니트로에게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인 것들이 많았고, 니트로만의 규칙이 있어 매일 충실히 정해진 순서를 지켜 하교를 해야 했다. '친구'라는 존재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글씨를 쓰거나 뭔가를 배울 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니트로는 학교를 좋아하면서도 학교 규칙을 지키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니트로는 사람들의 반응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부모와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 역시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반 분위기를 망치는 문제아로 낙인 찍혀 날마다 이어지는 체벌, 집단 따돌림을 당할 뿐 친구 하나 없는 나날, 엄하고 냉정한 태도로 일관하는 가족까지. ‘니트로의 학교생활은 하루도 평온할 수 없었다. 단체생활에 부적합하다,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 일부러 반항한다 등 온갖 몰이해와 오해 속에 억압당하며 괴로워하는 한 발달장애 아이의 아픈 성장기는 재미있게, 코믹하게 그려져 있지만 전혀 웃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선생님들의 폭력과 구박과 갖은 멸시들은 만화를 보면서 막 화가 날 정도로 어이가 없었는데, 이렇게 처절하게 학교에서의 시간을 견디는 아이의 상태를 부모가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은 마음이 너무 아프기도 했다.

저자는 말한다. 30년 전 이야기이지만, 나에게는 어제의 일처럼 느껴진다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무슨 일을 겪었던 시간이 어느 정도 해결해줄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상처란 결코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상처 위에 딱지가 생기고, 아물어서 괜찮은 것처럼 보일 뿐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작가가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았다라고, 삶의 아이러니를 쿨하게 긍정한다고 해도, 그리하여 이토록 무거운 이야기를 너무도 유쾌하고도 경쾌하게 그려냈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이 작품은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슬픈 책이었다.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이상한 사람이 아니라이해 받고 싶은 사람일 뿐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의 이야기에 아주 조금만 신경 써서 귀 기울여주고, 그저 남들과 똑같이평범하게 대해주자. 저자의 바람처럼 언젠가는 발달장애가 이해 받는 세상이 되길 나도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이 책은 자녀가 있는 부모들과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내가 미처 몰랐지만 나의 아이가, 내가 무심코 지나쳤지만 나의 학생이 니트로가 거쳐온 이런 시간을 겪어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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