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노, 살아
있는 한 곤란하게 돼 있어.
살아 있는 한 무조건 곤란해.
곤란하지 않게 사는 방법 따윈
결코 없어.
그리고 곤란한 일은 결국 끝나게
돼 있어.
어때?
이제 좀 안심하고 곤란해할 수
있겠지? p.15
<보노보노>는 1986년 출간되어 1988년 고단샤 만화상 수상
후 30년 넘게 연재를
이어오고 있는 네 컷 만화가 원작이다. 이 책은 김신회 작가가 보노보노를 천천히 음미해 읽으며 아직도 서툴기만 한 우리들을 위로해줄 문장들을
끄집어내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더해낸 에세이이다. 출간 후 엄청난 공감과 인기를 끌었던 터라, 여름에는 <보노보노의 인생상담>이 방수 커버 에디션이 나왔었는데, 이번에는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와 <보노보노의 인생상담> 모두 새해를 맞이하여 윈터 에디션이 출간되었다. 특히나 윈터 에디션은 양장판이라 선물용으로도 더할
나위없이 고급스럽고 튼튼해서 실용적이다. 게다가 <보노보노>의
원작자인 이가라시 미키오 작가가 한국 독자들을 위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포근한 겨울을 나는 보노보노와 숲속 친구들의 모습을 스폐셜 커버로
그렸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언젠가 방송을 보다가 너무
공감되는 멘트가 있었다. 길을
걷다 만난 초등학생이 너무 예뻐서 강호동이 아이에게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될 거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곁에 있던 이경규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데, 이효리가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라고 한
거다. 왜 우리는 그렇게 너
하고 싶은 대로, 아무나 되면
된다고 말하지 못할까. 싶은
생각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보노보노에도 비슷한 상황이 등장한다.
홰내기가 자신은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다른 친구들은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다. 그때 시니컬한
너부리가 말한다. "딱히 되고
싶은 것 따윈 없어. 난
나야. 지금 이대로의 내가
좋다고." 그야말로 촌철살인의
대사이다. 그저 투덜거리면서
시비를 거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너부리가 하는 말이 사실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지금의 자신이 싫다는 거잖아."라는 말이야 말로 늘 쫓기듯 살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지금의
자신을 사랑하기란 생각만큼 쉽지가 않으니 말이다.
내가 어른이 되면 누군가 "됐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아직 안
됐다면 "안
됐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안심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p.133
보노보노는 소심하다. 보노보노는 걱정이 많다. 보노보노는 친구들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보노보노는 잘할 줄 아는 게 얼마 없다. 어?
이게 내 얘기인 것 같은데,
싶은 사람들이 비단 김신회 작가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혹은 당신이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캐릭터가 바로 보노보노일지도 모르겠다.
혼자서도 잘 놀고,
소극적으로 뭔가를 보고 기다리는 캐릭터. 소심한 만큼 걱정도 많고, 잘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무식하고 우직하게 노력하는 그런
캐릭터. 느릿느릿,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보노보노의 행동이 정말 묘하게도 위로가 된다. 저자는 보노보노를 알고 나서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고
말한다. 늘 뾰족하고 날 서
있던 마음 한구석에 보송한 잔디가 돋아난 기분이라고 말이다.
어느 날 보노보노는 꿈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왜
이상한지 모르겠어서 질문을 하고 다니다가 너부리를 만난다.
"꿈이 이상한 이유는 이상하지 않으면 곤란하기 때문이지. 만약 이상하지 않거나 재미도 없다면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거 아냐." 보노보노는 또 야옹이 형을 찾아가서 묻는다.
"꿈이 왜 이상하냐면,
다들 원래부터 이상하기 때문이야. 깨어 있을 때는 그러면 안 돼, 이러면 안 돼. 따윌 생각하면서 조금 덜 이상하게 행동할
뿐이야." 우리는 원래 이상한
사람들이라서 꿈이 이상한 거라는 이야기가 어쩐지 위로가 된다고,
김신회 작가는 말한다.
이상한 사람은 이상한 꿈을 꾸기 마련이다. 이상하지 않은 사람은 이상한 꿈을 꾸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 꿈을 꾸는 사람은 없으니
결국 사람은 다 이상한 거다! 라고. 하핫. 이게 다
무슨 이상한 소리냐고? 이
책에 실린 보노보노의 네컷 만화를 읽다가도,
저자가 밑줄 그은 보노보노와 친구들의 대사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뭔가
이상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고 말이다.
<보노보노>가 좋은 이유는 젠체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오한 이야기를 심오하게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심오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이 책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역시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