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는 "어른이란, 배신당한 청년의 모습이다"란 말을 남겼지만, 어쩌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이란,
목숨을 걸었던 첫사랑에 마음을 찢긴 소년 소녀라고. 길에 널린 행복한 커플들에게 배신당한 첫사랑의
복수를 대신해줄 악의로 똘똘 뭉친 운석과도 같은 악녀는 더없이 상쾌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배신당한 우리를 대표해 세상을 속이고 남자에게 맞선다. 버림받은 입장에선 기립 박수를 쳐주고 싶은
존재다. p.71~72
출간 직후 아마존 재팬 에세이 분야
1위에 오르며 전국 서점에 품귀 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일본에서 화제가 된
책이다. 저자 F는
이름도, 성별도, 나이도
알 수 없는 익명의 작가로, 10~20대 독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팬덤이 형성되었다.
사랑,
연애,
섹스,
인간관계,
외로움 등의 주제를 독특한 시선과 문장으로 풀어낸 65편의 에세이와 송아람 작가의 일러스트 만화가
함께 실려 있는데, 짧은
에피소드 속에 날카로운 진심이 담겨 있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인 F는 '외롭다'라는 말은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그런 말을 쉽게
뱉을 수 없어진, 모든
사람들의 밤에 이 책을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게 마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종종 내 마음 같지가 않아서
외롭고,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하고, 회사에서도 동료들과도, 학교에서 친구들과도 마찬가지이다.
그리하여 잠 못 들고 뒤척거리는 밤이 생기고,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것 같은 기분에 쓸쓸해지는 그런
날에,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른스럽지 못한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우리에겐 위로가 필요하다.
비슷한 감정을 함께 풀어내고,
공감해 주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아마도 그래서 F는 이 책을 쓰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깊은 밤에 딱 하나 바라는 게 있다.
꿈을 포기했을 때나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딱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고, 언제나 그런 생각을 한다. 의논을 하지도 않고, 상담을 받는 것도 아니고.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칭찬하지도 깎아 내리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둘 중
하나가 부서질 때까지 얘기만 하는, 들어주기만 하는 밤이, 앞으로 살면서 몇 번 찾아올까?
그날 밤만을 위해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p.156
이 책에는 사랑과 연애에 대한 이야기들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담겨 있다. 사람은 이유를 좋아하는 생물이라, 무엇이 됐든 누가 됐든 이유를 원하게
마련이지만, 누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이유가 필요 없다. 그래서 좋아진 것이 아니라, 그저 문득 좋아진 것이니까.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잘 몰라도 된다.
그 어느 누구와도 서로 잘 모르는 채로, 입 다물고 그냥 사랑하고 싶다, 라고 말하는 저자의 글을 보며 나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어떠했나 돌아보게 되었다.
언제나 모든 일에 이유를 대고,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시키곤 했던 나였기에, 왠지 모르게 뜨끔해져서
말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좋아진 것이 바로 사랑인데 말이다.
사랑과 연애뿐만 아니라 우정,
인간관계,
이별,
취업,
사회 생활 등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청춘은 어마어마하게 잘못된
선택의 연속이라고, 외로울
때는 실컷 외로워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투정을 부렸어야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추억이란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며, 그때 더 부끄러운 짓을 했었더라면 지금보다 덜
후회하고 살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 나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했던 그런 책이었다.
이유 따위는 묻지 않고,
남들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무엇보다도 나의 감정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익명의 작가로 책을 출간해야 할 필요가
있었나 싶을 만큼 문장력도 탄탄하고, 감성적이지만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딛고 서있는 글들이라 더 좋았던 것 같다. 거기다 그래픽 노블 <자꾸 생각나>로 청춘들의 삶과 연애를 적나라하게 담아내 공감을 불러일으킨 송아람 작가가
원고를 읽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그린 에피소드들 또한 원래 이 책에 포함되었던 만화들이라고 느껴질 만큼 착착 달라붙어 있어 더욱
흥미진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