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을 넘기면서 체력적으로도 상당히 약해졌습니다.
특히 아내를 잃고부터 일종의 의욕이란 것이 사라진 모양인지 움직임이 크게
둔해졌지요. 스스로 몸을
일으키는 일이 참으로 어려워졌습니다. 머리로는 '이래서는 안 된다. 당장 움직여야 하는데' 생각하지만 몸이 무거워 마음속의 악마가
'내일 해도 되잖나'
하고 속삭입니다.
늙은이를 움직이게 하려면 '당신이 필요해요' 하는 외부의 큐 사인을 받아야 함을
느꼈습니다. p.74~75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 일흔의 나이에 슬픔을 치유할 새도 없이 혼자 살아가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책이다. 평생을 안과의이자
교수로 승승장구하며 살아온 '니시다 데루오'는
헌신적인 아내의 지지 덕분에 불편함 없이 살아가던 철부지 남편이었다.
어느 날 아내가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았고, 아홉 달에 걸쳐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폐와 간으로 전이가
되어 반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 그리고 암 진단으로부터 약 1년 반 후, 아내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아내는 인생의 마지막 몇 달간 남편에게 세탁과 요리 특훈을 해주었다. 덕분에 아내가 없는 지금, 남편은 서툰 집안일 앞에서 악전고투를
벌이지만,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한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남긴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세요"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물론 아내가
떠나고 1년 이상이 흐른
지금, 아내의 손길로 늘
청결하고 쾌적했던 예전의 집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사람이란 참 어리석은
존재라, 소중한 모든 것은
그것이 사라져 버린 후에야 깨닫곤 한다. 곁에 있을 땐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느껴져 그 가치를 모르고 있다가, 그러한 존재가 떠나고 홀로 남겨지고 나면 그제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저자인
니시다 데루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과의로 진료에 종사했고 안과 연구자로서 몇 가지 새로운 지견을 발견했으며, 또한 교육자로서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생활했으니 소위 집안일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매일의 식사
준비, 세탁 그리고 가끔 하는
청소.. 따로 놓고 보면
집안일은 크게 시간을 잡아먹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전체로 보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혼자서 직접 해보니
집안일이라는 게 엄청난 작업임을 알게 됐던 것이다.
오죽하면
'집안일에 치여 죽겠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쳐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버릴 게 하나도 없습니다.
특히나 젊은 시절에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뭘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도,
나이를 먹고 세상 보는 눈이 변하고 입장이 바뀌면 그게 다 도움이 되는구나 하고 무의식 중에
생각합니다. p.152~153
이 책은 아내가 떠나고, 홀로 남겨진 노년의 남자가 생활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슬픔과 상실감보다는 그것을 극복하는 일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매우 담백하게
읽힌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 살아 있는 건
다 죽게 마련인 것이 당연하다면, 그러한 이치를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삶의 태도 또한 순리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남겨진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 가야만 한다. 문제는 평생 아내에게 의지하며 살아
왔던, 일흔이 넘은 나이가 된
노년의 남자라면 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아내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면서, 혼자서 집안 일을 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깨달은 것들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잃어버린 것을 세지 말고 가진 것에 감사하라.
내가 만난 사람들이 곧 나의 인생임을 기억하라. 죽을 때까지 계속 배우면서 재미있게
살아라. 은퇴 후 시작되는
인생의 황금기를 누려라. 멋지게 나이 들고 싶다면 설렘을 포기하지 마라.
언제 닥칠지 모를 긴급 상황에 대비하라. 남은 인생은 덤이라 여기고 마음껏 즐겨라.
나이를 먹을수록 몸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마음가짐도 약해지고 서서히 모든 일에 무뎌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홀로 생활하면 마음을 서로 터놓을 수 있는 사람과 감동을 나눌 수도
없다. 그렇게 점점 마음이
말라가게 되면, 곧바로 몸을
움직이기도 귀찮아져 행동도 무뎌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몸과 마음, 그리고 감정의 균형을 얼마나 잘 잡느냐가 근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남편들에게 한 권씩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