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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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는 싫어. 들어봐요. 일정한 리듬이잖아요. 그게 싫어. 카운트다운을 하는 것 같아."

"카운트다운이라니?"

"........폭탄." 유카리 씨는 자조적으로 입술을 일그러뜨리고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이 안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어요. 언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반드시 폭발하는 시한폭탄이."   p.16

해안가에 지어진, 모든 병실이 1인실인 부유층을 위한 요양 병원 '하야마곶 병원'. 이곳은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편안하게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호스피스도 겸하고 있다. 우스이 소마는 한적한 이곳으로 실습을 오게 된 신참 수련의이다. 그는 최근 몇 개월 동안 외과와 응급센터 등 힘든 과에서 연수를 받은 데다 짧은 수면시간을 줄여 공부하느라 몸이 좋지 않았다. 평온한 자연에 둘러싸인 이 병원에서 심신을 치료하라는 내과 과장 나름의 배려로 반 강제로 이 병원으로 실습을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스이는 특별한 환자를 만나게 된다. 그보다 두 살 위인 스물 여덟의 나이로 최악의 뇌종양을 앓고 있는 환자, 유가리 타마키. 자신의 머릿속에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있다며,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면 뇌가 속에서 조금씩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는 그녀. 유가리의 제안으로 대기 시간에 그녀의 병실 책상에서 공부를 하게 된 우스이는 점점 그녀와 친해지게 된다.

우스이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엄청난 빚을 지고는 애인과 도망갔다는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돈을 잔뜩 벌고 싶어서 의사가 되었고, 지금도 열심히 공부해서 미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아직도 집안에 빚이 있었고, 돈이 없는 탓에 가족의 인생이 비참해진 거라고 생각했기에 오로지 돈과 출세에만 집착하며 살아왔다. 반면 유가리는 어린 시절 부모님 두 분을 모두 잃고 조부모님 손에 자랐는데, 3년 전에 조부모님들 마저 돌아가시고 나서 천애고아의 신세가 되었다. 조부모님이 대부호였고, 유언에 따라 엄청난 유산을 모두 물려받게 되었는데, 작년 초에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만큼은 조금 사치를 부리기로 해서, 이 병원에 왔지만, 자신이 죽으면 유산을 상속받게 되는 상당히 먼 친척 때문에 외출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산을 상속받을 예정인 사람은 큰 빚이 있었고, 그녀가 한시라도 빨리 죽어서 돈을 받고 싶어 그녀에게 무언의 압박을 그 동안 가해왔던 것이다.

 

"......폭탄이라면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 유카리 씨가 미간을 찌푸린다.

"이제까지 연수를 통해 젊은 나이에 사고나 병으로 세상을 뜨는 환자를 여러 명 봤습니다. 그 중에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아주 평범하게 생활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보이지 않는 폭탄'을 안고 살아간다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p.114~115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로 평생을 돈과 출세에만 집착하며 살아온 남자, 우스이 소마, 상속받은 유산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머릿속에 뇌종양이라는폭탄을 안고 하루하루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유가리 타마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본다. 유가리 덕분에 오랜 상처를 극복하게 된 우스이는 그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실습 마지막 날 그녀의 만류로 결국 고백을 하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렇게 다시 히로시마로 돌아와 일상을 보내던 우스이는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는데, 그녀의 죽음에는 어쩐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사실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다시 하야마곶 병원으로 향한 그에게 원장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한다.

 

"자네는 한 번도 유가리 타마키 씨를 진찰하지 않았네. 전부, 자네의 망상이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정말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환상이었던 것일까.  호스피스 병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로맨스는 후반부에 가서 놀라운 반전과 미스터리로서의 매력을 보여 준다. 작가인 치넨 미키토가 실제로 의사로 활동했다는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기에, 그 동안 병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작품들이 많았다. 역시 이 작품에서도 자신만의 장점을 잘 살려 생사의 생사의 갈림길을 매일 마주하는 의사로서의 고뇌와 호스피스 병원에서 지내는 환자들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휴먼 드라마로도, 색다른 미스터리로서도 매우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후반부의 충격적인 반전으로 이어지는 결말은 뭉클하기도 했고 말이다. 누구라도 내일까지 산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누구나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셈이다. 하지만 그 폭탄에 겁을 먹는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오직 하루하루를 필사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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