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은 매우 방어적인 책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다른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비웃는 것을 오랫동안
조용히 듣고 있었고 이들이 자신을 비웃는 모습을 오랫동안 상상해오던 사람이 쓴 책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다윈은 다른 과학자들의 반박에 하나하나
대응해나간다. 오래된 종이
조금씩 새로운 종으로 바뀐 것이라면 왜 동물들은 그렇게 서로 다른가?
여기에 대해 다윈은 이렇게 대답한다. 즉 두 가지의 유사한 종 사이의 경쟁으로 인해 하나가
멸종됐고, 따라서 오늘날 살아
있는 동물들은 과거에 살았던 모든 종에서 이런저런 식으로 선택된 종의 후예이다.
p.100
가끔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과학책을 만날 때가 있다. 에세이나 인문서, 자기 개발서에서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과학
도서만의 매력이 있다. 대부분의 전문서들이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그들만의 리그를 펼쳐서 일반 독자 입장에서는 진입 장벽이 높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만난 칼
짐머의 <진화>는
굉장히 술술 잘 읽힌다. 두툼한 페이지 두께가 무색하게 진도가 쑥쑥 나가는 그런 책이라 누구나 부담 없이 '진화론'에 대해,
다윈과
'종의 기원'에 대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인류를 뒤흔든 과학적 발견이야 많지만 다윈의 진화론만큼 심하게 세상을 흔든 것은 없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발견 정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게다가 다윈의 이론은
인간 자신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시각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생명은 신이 직접 개입할 필요 없이 유전의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변화에 이끌려
조금씩, 그리고 영원히
달라져간다는 그의 말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신의 창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진화의 산물은 수많은 종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진화론은 교과
과정에서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전공자가 아닌 이상에야 접하기 어렵다.
게다가 생물학 교과서나
<종의 기원>
같은 고전을 보더라도 높은 난이도에 좌절하기 십상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진화 관련 교양서 대부분은 세부
주제나 특정 이슈를 다루는 데 집중되어 있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건 보기 힘든 편이다. 칼 짐머의
<진화>가 현존하는 진화에 관한 책 중 단연 최고라는 해외 언론의 평이 과장이 아닌
것이다.
이런 예측이 옳다면 앞으로 수백 년간 또 한 번의 대량 멸종이 일어날 것이고 생물종의 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다. 인간은 생물종이 최고로 다양해졌을 때 지구를
물려받았으므로, 그 중 절반을
잃는다면 절대적인 숫자로 보아 사상 최대 규모의 멸종이 될 것이다.
몇몇 측면에서 이번 멸종은
과거의 멸종과는 다를 것이다. 운석은 궤도를 바꿀 수 없지만 인간은 바꿀 수 있다.
멸종의 규모는 앞으로
100년간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p.289
이 책은 '진화'라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 그것이
자연과 인간의 경이로운 현상들을 어떻게 설명해내고 풀어내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진화론의 역사,
진화의 핵심 개념과 주요 원리, 관련 이슈를 총망라해서 '한 권으로 끝내는 진화의 모든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동물의 진화 과정을 알기 위해 생물학자들은 괴물을
만들기도 한다. 유전자 하나만
바꿔주는 걸로 돌연변이를 만들어 그로부터 유전자의 비밀을 밝혀낸다.
멸종에 적용된 진화의 법치에 대한 챕터 또한 매우 흥미로웠다. 고생대가 끝나고 중생대가 끝나는
시기인 2억 5,000만
년 전에 일어났던 대량 멸종으로 생명체의
90퍼센트가 사라졌다.
이것은 오늘날의 현상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과거의 멸종으로 인해 지구의 생명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이고 엄밀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탄탄한 줄거리와 풍부한 스토리텔링으로 마치 서사 문학을 읽는 것처럼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이 책은 매 챕터가
흥미로웠지만 '양성의
진화'라는 테마는 특히나
충격적이었다. 성선택은 자기
유전자를 퍼뜨리고자 하는 욕구를 통해 공작의 화려한 깃과 수탉의 커다랗고 붉은 볏을 비롯, 영아 살해,
이타주의와 같은 자연의 미스터리를 훌륭하게 해결하는 것을 보여준다. 진화생물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양성 간의 갈등은
동물들 세계의 난잡한 그것을 넘어서 인간들의 생식과 유전자에 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에 적용이 되어 놀라웠다. 연대, 배신, 속임수, 신뢰, 질투, 간음, 모성애, 자살로 이어지는 사랑 등 이 모든 것들이 동물의
수컷, 암컷 세계와 인간의
그것과 매우 유사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론과 사례들을 읽다 보니 동물의 암컷과 수컷은 어쩔 수 없이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결코 좁혀질 수 없는
양성 간의 갈등이 인간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류의 기원은 진화 과학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분야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40억 년에 걸친 생명의 진화는 그야말로 복선과 반전이 가득한 장엄한 흥미로운
드라마'였다. 그리고
진화론이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이렇게나 유용한 것이라는 사실 또한 매우 놀라웠다.
이 책 덕분에 생명의 다양성과 자연의 경이가 새삼 아름답고 경이롭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소설만큼이나 '재미있는' 과학책이니, '진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던 분들이라면 꼭 읽어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