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누가 할래 - 오래오래 행복하게, 집안일은 공평하게
야마우치 마리코 지음, 황혜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웨딩드레스를 입고 모두에게 축복받으며 최고로 행복해하던 순진무구한 여자는 어느새 "나는 당신의 가정부가 아니야!"라며 분노하는 주부가 됐고, 가정에 무관심한 남편("누구 돈으로 밥 먹고 사는데?"가 입버릇)에게 방치된 나머지 여자로서의 자존심을 되찾고자 섹시한 남자(대부분이 놈팡이)와의 불륜에 빠져 자멸하고 만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런 틀에 박힌 스토리가 더 이상 드라마가 아닌 현실로 자리 잡게 됐다.   p.6

 

내가 조금 어렸을 때, 그러니까 결혼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을 때는 막연히 가족이라는 개념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수십 년을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타인과 하나의 가족을 이루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매 순간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가끔은 무조건 희생해야 하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공유해야 하는, 사실은 엄청난 노력이 바탕이 되어 유지되는 공동체가 바로 가족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결혼은 사랑의 문제가 아닌 책임의 영역이었고,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숨 쉬는 순간까지 서로 맞추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완벽하게 다른 환경에서 수십 년 동안 살아왔던 남자와 여자가 동거에서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남녀가 연애가 아니라 일상이라는 현실을 함께한다는 것의 중심에는 '집안일이라는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저자는 아오이 유우 주연의 [재패니스 걸스 네버 다이]라는 영화의 원작 <아즈미 하루코는 행방불명>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녀는 20대 후반부터 결혼에 대해 고민하다, 30대의 문턱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도호쿠대지진을 계기로 피붙이 하나 없는 도쿄에서 혼자 생활한다는 것이 무서워 시작한 동거 생활은, 예상만큼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파악하게 되는 남자의 실태가 매우 신랄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각 장의 끝에는 귀엽게도 남자 친구의 항변이 담겨 있는 페이지가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 여성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이런 부분들 때문에  '공평하게' 각자의 입장을 들어볼 수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로웠던 책이었다. 이 책은 결혼한 여성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많을 것 같고, 결혼을 앞두고 있는 커플은 물론 미혼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남편이 쓸모 없다고 처음으로 느낀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이사 때였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진짜 아무것도 안 하네. 입만 살았어.....'라며 충격을 받았던 그날로부터 벌써 4년이 되어간다. 다음 달에 또 한 번의 이사가 있을 예정인데, 이번에 남편은 대기 선수처럼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하지만 아무것도 맡기지 않을 테다. 다 내 마음대로 할 거다. 제발 시키는 거나 제대로 해주길.....     p.188

 

갈수록 비혼, 저출산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실제로 최근 조사에서 4명 중 1명은결혼을 하지 않고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 여성을 중심으로 연령이 낮을수록 '결혼을 해야 한다', '자녀가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낮다고 한다. 아직은 자녀를 낳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지만, 미혼이나 청년층은 자녀출산을 위해 결혼이 전제돼야 한다는 인식이 차츰 변하는 추세이고,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도 겨우 과반수를 넘을 정도였다. 성별로 나눠보면 상대적으로 남자는 해야 한다는 비율이 높은 반면, 여자는 과반수도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있었다. 사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직까지는 여자에게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연애할 때는 서로에게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하기 싫은 것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그 순간만큼은 상대를 위해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에게서 자신이 보고 싶은 면만 보려고 하기 때문에, 단점은 쉽게 눈에 띄지 않고, 주위에서 뭐라고 얘기를 하든 흘려 듣게 마련이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함께 살게 되면서 우리는 그 비현실적인 필터링에서 벗어나, 서로의 원래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민낯까지 공유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 사람이 내가 알던 그 혹은 그녀가 맞는지 혼란스럽고, 뭔가 속은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고, 사소한 일로 분하고 서운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와 남자는 완벽하게 다른 존재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은 존재이다. 사실은 더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서로에게 어리광부리고 싶은 것이며, 각자 자기 편한 대로만 생각하는, 아내와 남편은 둘 다 거기서 거기라는 얘기다. 각자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가정 내 여남평등은 물론 두 사람 모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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