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 런치의 앗코짱 앗코짱 시리즈 1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다음주 일주일 동안 내 도시락을 싸주지 않겠어? 이 정도 도시락으로도 괜찮으니까."

"? 제가요?"

무심결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럼. 너지. 또 누가 있다고."    p.13

미치코는 초등학생용 교재를 전문으로 하는 조그만 출판사 영업부에서 보조로 근무하는 파견사원이다. 그녀는 친구도 별로 없고, 특별히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미인이라고도 할 수 없다. 'YES'가 유일한 처세술이라 웬만한 사람들의 부탁은 내키지 않더라도 거절하지 못한다. 영업부 정사원들은 보통 출장을 가거나 외근 나간 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오기에, 미치코는 아무도 없는 영업부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곤 했다. 그 날은 별로 식욕이 없어서 가져온 도시락을 먹지 않고 있었는데, 유일한 영업부 여자 정사원인 앗코 여사가 점심을 같이 먹자고 제안을 하게 된다. 앗코 여사는 떡 벌어진 어깨에 큰 키로 잘 빠진 바지 정장을 입고 업무 성과도 뛰어나 혼자만 특별한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앗코 여사는 미치코가 먹지 않은 도시락을 대신 먹어도 되냐고 묻고, 도시락을 먹고 나서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자신의 일주일 점심 코스와 바꾸기 놀이를 하자고. 미치코가 앗코 여사의 점심 도시락을 싸오고, 대신 점심값과 가게 지도와 주문 메뉴를 알려 주겠다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일주일 점심 바꾸기가 시작된다.

평소 함께 외식할 친구도 없고, 돈에 여유가 있던 것도 아니어서 제대로 된 외식을 거의 해본 적 없었던 미치코는 앗코 여사가 남긴 메모와 지폐를 들고 식당을 찾아 간다. 그곳은 카레 한 가지만 단일 메뉴로 파는 곳으로 미치코는 카레를 먹으며 몸이 갑자기 뜨거워진다. 차갑게 굳어버린 무언가가 천천히 녹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어지는 화요일의 메뉴는 크림치즈와 새우, 토마토, 아보카도가 들어 있는 샌드위치였고, 수요일에는 튀김덮밥 등등...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먹는 음식들은 미치코의 일상을 조금씩 달라지게 만든다.

 

"알아요? 혼자 식사하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먹어야 더 오래 산대요."

"그런 얘기 종종 들었는데, 왜 그럴까요?"

"누군가와 같이 먹을 때는 음식 수가 늘고, 따뜻한 국물도 함께 먹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소화가 잘 돼요. 시간 들여 천천히 먹으니, 잘 씹어서 과식하지 않게 되고요. 같이 먹으면 좋은 점이 많아요."   p.102

언제나 수동적으로 타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던 삶의 태도가 조금씩 적극적으로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은 소소하지만 뭉클하고, 마치 좋은 음식을 직접 먹는 것 같은 따뜻한 기분 마저 들게 한다. 부하 직원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싸는 일을 시키다니 뭐 이런 갑질이 다 있나 싶었지만, 앗코 여사의 고압적인 말투 뒤에 숨어 있는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왜 일본 독자들은 고압적인 말투를 가진 갑질 상사 앗코짱에 열광한 것일까. 왜 하필 쪼잔하게도시락 갑질이나 하는 것일까. 궁금하다면 앗코짱 시리즈를 직접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출간 즉시 10만 부를 돌파했고, 출간 다음해 NHK의 드라마로 제작되는 등 앗코짱 신드롬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만큼 앗코짱 캐릭터는 독특하고 색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유즈키 아사코의 작품은 <서점의 다이아나> <나일 퍼치의 여자들>이라는 작품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여성 특유의 내면을 세밀하게 그려내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유즈키 아사코가 그려내는 여자들의 삶에 관해 아기자기하고 따스한 이야기들을 좋아하기에, 앞으로 이어질 앗코짱 시리즈가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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