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사망법안, 가결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 / 왼쪽주머니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었다.

이에 따라 이 나라 국적을 지닌 자는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 예외는 왕족뿐이다. 더불어 정부는 안락사 방법을 몇 종류 준비할 방침이다. 대상자가 그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한다.   p.9

늙고 쇠약한 부모를 산에다 버렸다고 하는 장례 풍습으로 '고려장'이라는 것이 있다. 설화로 전해지는 이야기지만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늙은 부모를 산에다 버리는 풍습을  풍습과 관련된 설화는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있었다. 일본에도 '우바스테야마'라는 이름으로 전해졌고 말이다. 굳이 인간의 도리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내 상식으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있었을까 싶지만, 어이없게도 '고려장'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노부모를 해외 여행지에 버리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며 매년 증가하는 노인 학대에 대한 뉴스가 실제로 있었으니 말이다. 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그러나 싶어 씁쓸했지만, 나의 부모도 점점 나이가 들테고, 나 역시 언젠가는 노인이 될테니 오싹해지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은 '70세 사망법안'이라는 충격적인 설정으로 시작한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인한 문제는 많은 작품에서도 다루어온 소재이지만, 이 작품 만큼 파격적인 대안을 제시했던 적은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극중 정부는 고령 인구에 대한 의료와 복지로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고, 저출산으로 인해 생산 인구는 충당되지 않는 사회적 악순환의 고리를 일거에 끊기 위한 대체 요법으로 '70세 사망법안'을 내놓았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고령화에 부수되는 국가 재정의 파탄이 일시에 해소된다고는 하지만, 명백한 인권친해라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전 세계를 경악시킨 이 법안은 2년 후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니까 법안이 시행되는 2년 후면, 70세 이상이 되는 노인들은 전원 죽어야 한다는 건데... 그게 현실이라면 너무도 잔인한 일이지 않을까. 가키야 미우는 이러한 사회 문제를 지극히 평범한 한 가족의 일상을 통해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런 말이 어디 있냐. 아빠는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으니 좀 편해지고 싶다. 내 시간도 필요하고."

"아빠, 그거 잘못된 생각이에요. 우리 세대는 죽을 때까지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그러니까 아빠도 죽을 때까지 일해요."

부엌에서 커피를 끓이는 아버지를 보고 이번에야말로 개과천선했나 보다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사람이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 듯하다.    p.350

 

침대에 누워 운신하지 못하는 시어머니의 수발을 든 지 이미 십삼 년째,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며느리 도요코에게 70세 사망법안은 한 줄기 희망이 된다. 도요코가 쉰다섯이니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15, 남편은 쉰여덟이니 앞으로 12, 시어머니는 여든넷이니 법안이 시행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2. 시어머니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앞으로 2년 후를 상상만 해도 해방감에 도요코는 가슴이 벅차 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늘 바쁘다는 핑계로 남편은 주말에도 전혀 집안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좋은 대학에 멋진 직장을 다녔지만 인간관계로 인해 회사를 그만둔 지 삼 년째 백수로 지내고 있는 아들은 방에만 틀어박혀 나오질 않고 있었다. 집을 나가 혼자 살고 있는 딸 역시 엄마를 도와 줄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가족들을 보살폈지만 아무도 그녀의 수고는 생각지 않는다. 시어머니는 늘 그녀에게 고약하게 굴고, 남편은 집에 있는 날에도 피곤하다며 늦잠만 자고, 딸은 집을 떠나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아들은 2층에서 좀처럼 내려 오지 않고, 대체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들의 이해와 도움이 없는 가운데 홀로 수발에 지쳐가는 노인 돌봄 문제는 실제 현실에서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극중 도요코는 급기야 집을 나가기에 이른다. 그녀를 가출에 이르게 한 그 모든 상황들이 너무도 리얼하게 그려져 있어 안타깝고, 공감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도요코의 시선으로만 이야기를 그리지 않고, 각자의 입장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어 흥미로웠다. 시어머니 기쿠노는 혹시 자신이 부르지 않으면 며느리가 영원히 오지 않는 건 아닐까, 자신이 여기 누워 있다 죽어도 모르지 않을까. 불안했고, 아들인 마사키는 아무 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다가도 이름 있는 회사가 아니라면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지 않을까 걱정한다. 딸인 모모카는 어쩌다 노인 요양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노인들을 돌보면서 비로소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70세 사망법안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힘겨운 현실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반가운 소식으로, 누군가에게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로, 누군가에게는 열심히 살아왔던 인생 자체를 무시당한다는 처사로 다가오게 된다.

사람의 목숨을 인위적으로 제한한다는 말도 안 되는 설정에서 시작된 이야기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실재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가슴 한 켠이 묵직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야 찾기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다 같이 조금 더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작가의 시선 또한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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