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김신회 지음 / 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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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도 완벽주의를 지향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이 다치는 게 싫어서 누군가에 대한 호감을 접고, 실패할 것이 두려워서 새로운 도전을 미룬다. 노력도 가능성이 보여야 하는 거라는 생각, 이제 와서 용써봤자 소용없다는 생각, 그래도 한번쯤은 시도해봐야겠다 생각은 하면서도 어느새 온갖 안전하지 않은 결말들에 사로잡혀 조용히 마음을 접는다. 그 과정은 참는 것만 잘하는 사람, 모든 일에 시큰둥한 사람을 만들어낸다.   p.47

우리는 살아 오면서 평생 부모님에게, 선생님에게, 어른들에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매사에 노력해야 하고,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 것이고,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며, 좋은 집에 살게 될 거라고.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얻기 위해 무조건, 열심히 살아 왔다. 그런데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에세이의 제목들을 보고 있자니, 순간 멈칫하게 된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라든가,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어> 혹은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라니 말이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은 말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되어 버린 우리들은 알고 있다. 노력이란 것이 항상 정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애초에 인생이란 공평하지 않은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더 이상 열심히 살지 않기로 해도 되지 않을까. 가끔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의 저자 김신회는 일 년 반 전쯤, 갑자기 오른손 집게손가락에 불편함을 느끼게 됐고, 그 손으로는 일을 하는 것도 무리여서 어쩔 수 없이 일을 쉬어야 했다고 한다. 덜컥 무기한 휴가가 주어졌지만 그녀는 쉬는 법을 몰랐다. 성과는 없어도 끊임없이 움직여대던 일중독자였으니 말이다. 우리는 열정과 노력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반대의 경우에는 뭔가 도태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래서 그녀처럼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뭔가 일을 만들어 하거나, 목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많은 이들이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산다. 쉬는 날에도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겠고, 진짜 휴식이 뭔지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열심히 사는 사람밖에 없는데, 정작 자기 삶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 그렇다면 우리는 뭘 위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거란 말인가.

 

 

왜냐하면 우리는 이유 없는 일에 화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화를 내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사 정당한 사람은 못 되더라도, 우리의 분노는 정당하다. 우리는 종종 나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기분은 나쁜 게 아니다. 설령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일단 그렇게 우기고 본다. 그래야 이 험준한 삶을 버텨낼 수 있지 않겠는가.    p.160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이 불안해서 끊임없이 자책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말한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다고, 그러니까 편하게 있어도 괜찮다고. 그렇게 누구보다 나에게 야박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기댈 데 없는 나를 제대로 돌보는 법을 하나씩 실행해나가면서 '나에게 관대해지는 법'을 알려준다. 그녀가 들려주는 여러 에피소드 중에 바로 실천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휴일엔 맥모닝'. 아무도 쉬라는 말을 안 했어도 스스로에게 휴가를 주는 하루의 시작에는 세수도 건너뛴 채 제일 먼저 냉장고로 향한다. 그러고는 맥주 한 캔을 골라 냉장고 문 앞에서 벌컥벌컥 마시는 거다. 시원한 맥주 줄기가 혀를 적시고, 시린 이를 간질이다 식도를 통해 배 속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비어 있던 배가 맥주 딱 300cc만큼 불러온다. 그녀는 이것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궁극의 해방감'이라고 부른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물 대신, 밥 대신 먹는 맥주 한 캔의 행복. , 생각만해도 기분이 시원해진다. 이렇게 쉬는 날에는 휴일인 만큼 최대한 마음 가는 대로, 게으른 하루를 보내 보면 어떨까. 가급적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그 어떤 생산적인 일을 도모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남들이 게으르다고 손가락질할 까봐, 이러는 동안 뒤처질 까봐,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불안해했다. 하지만 눈 뜨자마자 맥주를 마시고, 종일 시간을 허비하면서 그렇게 허투루 하루를 한번 보내보자. 주어진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지만, 사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세상을 잘만 굴러 간다.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지 못할 까봐 전전긍긍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어차피 나는 나, 세상에 내가 있어야 타인도 존재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나를 먼저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 동안 나 자신에게 너무도 인색하게 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나에게 관대해지는 법을 배우게 되자, 나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노력을 하든 안 하든 나는 계속 나일 것이고, 어차피 세상에 혼자라 해도 내 옆에 나는 남는다. 대단한 걸 이루지 않아도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며, 앞으로도 그 쓸모를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그 생각이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견디게 해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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