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내 것이었던
앨리스 피니 지음, 권도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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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꿈을 분리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현실도, 꿈도 다 무섭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나도, 지금이 언제인지는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아침이 왔다는 구분이 깨지자 오후도, 저녁도 다 깨진다. 내게서 도망간 시간을 되찾고 싶다. 시간에는 고유한 냄새가 있다. 친숙한 방처럼.   P.91

 

앰버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병원에서 코마 상태로 깨어 난다. 뭔가 아주 안 좋은 일이 일어났던 모양인데 그게 무슨 일인지, 언제 있었던 일인지 기억할 수가 없다. 그녀는 눈을 뜰 수도,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지만, 의식과 감각은 살아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들렸지만, 아무도 그걸 알지 못했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사고가 일어나기 일주일 전과 코마 상태로 병원에 있는 현재 시점을 오가며 진행된다. 그리고 이십오 년 전에 쓰인 열살 소녀의 일기장이 교차로 보여지는데, 일기장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알 수 없다.

앰버는 청취율 1위 프로그램인 <커피 모닝>의 보조 진행자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인 진행자인 매들린과 사이가 불편했는데, 급기야 크리스마스 며칠 전 매들린이 더 이상 그녀와 일하지 않겠다고 피디에게 통보를 한다. 게다가 그녀는 남편인 폴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상태였다. 동생인 클레어와 폴과의 사이를 의심하고 있었고, 그들은 최근 들어 다투기만 했다. TV리포터였던 앰버는 첫 작품으로 엄청난 성공을 한 소설가 폴과 결혼했는데, 이후 폴은 더 이상 소설을 써내지 못했고, 그녀는 함께 일하던 편집자의 추근거림에 방송 일을 그만뒀다. 폴은 아이를 원했지만 그들은 계속 실패했고, 더 이상 앰버와 폴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고, 게다가 앰버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실수를 하지. 중요한 건 그런 실수를 통해 배우는 거야. 이제 당신을 돌보는 일을 훨씬 잘할 수 있어."

이건 꿈이 아니야.

"돌아와서 다행이야. 당신도 나한테 고마워하고 있을 거란 걸 알아."

난 이 남자를 알아.   P.181

 

저자인 앨리스 피니는 BBC에서 15년간 리포터, 뉴스 에디터, 프로듀서로 일했고, 이 작품으로 작가로 데뷔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놀라운 데뷔작이 아닐 수 없는 작품이었다. 초반부터 몰입감이 대단한 작품이었고, 탄탄한 구성과 독창성 있는 전개가 그야말로 탁월했다. 읽는 내내 이 이야기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너무도 기대가 되어 두근두근 설레어 하며 푹 빠져들었다. 과거의 시간이 흘러 가면서 대체 그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추측하게 만드는 스토리도 흥미진진했고, 코마 상태인 녀가 주변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하나씩 받아들이는 상황도 너무도 긴장감 넘쳤다. 앰버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과속을 하다 사고가 났다고 하는데, 그녀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운전을 한 적이 전혀 없다. 게다가 남편 손에 심각한 상처가 생겼다고 하는데, 크리스마스 전까지 남편이 손을 크게 다친 적은 없다. 코마 상태인 앰버는 마치 타인처럼 느껴지는 남편의 진술을 그저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왜 그녀에게 사고가 생긴 걸까. 그녀가 기억을 되짚어 가는 과정은 정말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서스펜스와 탁월한 심리 묘사로 인해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의 원제는 'Sometimes I Lie'이다. '원래 내 것이었던'이라는 제목은 의역이라고 볼 수도 없을 만큼 완전히 다른 의미로 번역되어, 책을 읽기 전부터 궁금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면 왜 제목을 이렇게 했는데 저절로 이해가 된다. 탁월한 제목이고,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목덜미가 서늘해지게 만드는 제목이기도 하다. 사실 유사한 장르의 작품들을 많이 읽다 보면, 초반 어느 정도만 이야기가 전개되어도 이후에 펼쳐질 스토리의 방향이 대충 짐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간단해 보이는 스토리는 알고 보면 굉장히 복잡하게 얽히고 뒤틀린 플롯으로 만들어 졌고, 후반부에 몰아치는 반전 또한 그야말로 묵직한 충격을 선사한다. 더 이상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 건지, 누구의 기억을 믿어야 하는 건지, 뭐가 현실이고 아닌 건지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 되어서야 이야기 끝이 난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완전한 끝이 아니기도 하다. 정말 영리하게 잘 쓰인 작품이고, 올해 읽은 심리 스릴러 중에 단연코 최고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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