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오늘 새벽에는 초승달을 보며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고 빌었어요. 변소에 가려고 마당에 나왔다가요.
초승달에 낀 흰 달무리가 몽글몽글 떠오르는 순두부 같아 나도 모르게 입을 벙긋
벌렸어요. 그것을
먹으려고요. 어머니, 나는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어요.
눈동자가 생기기
전에……. 심장이 생기기
전에……. p.7
잠잠히 흐르는 물결 위에 열다섯 소녀가 편지를 쓴다.
아기를 가졌지만,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고 빌었다고. 글자를 배우지 못해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모르지만 물결로 검지를 가져가면
글자가 저절로 써진다. 그만큼
간절하고, 막막하고, 무서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오늘이 며칠인지 날짜를 모른다.
해가 뜨면 낮이고,
지면 밤이라는 것만 안다.
밤이 되면 송장놀이를 해야 한다. 나는 죽었어,
나는 죽었어,
나는 죽었어...
자신이 죽어 땅속에 누워 있다고 생각하려 애쓰며, 배릿한 흙냄새가 맡아질 때까지 소녀는 주문을
외우고 또 외운다. 낮이 되면
함께 있는 언니들과 함께 삿쿠(일제강점기 군용 콘돔)을 강물에 씻는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역사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속상할 만큼 미약했다. 나는 김숨의 이 작품을 읽으면서 속이 상했다.
마음이 아프고,
분했고,
화가 났다.
이들이 겪어야 했던 시간들은 단어 그대로 끔찍했고, 고통스러웠고, 치욕스러웠다. 작가 역시 취재한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위안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쓸 '용기'를 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처참한 지옥의 풍경을 정확하게 글로 묘사해내기란 차마 힘들다는 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어려웠을 테니까. 나
역시 그저 독자의 입장에서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외면하고 싶은 진실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입으로 삼킨 것은 토할 수 있는데,
눈으로 삼킨 것은 토할 수 없다. 눈도 입처럼 토할 수 있다면, 나는 내 몸에 다녀간 군인들의 얼굴을 토하고 싶다. 가장 처음 내 몸에 다녀간 군인의 얼굴을 가장
먼저. 처음 내 몸에 다녀간
군인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얼굴이 쓰고 있던 뿔테 안경은 기억난다.
그 얼굴을 토하다 안경이 부러지고 깨지면 어쩌지? 깨진 뿔테 안경 조각이 내 눈동자를
찌르면?
나는 얼마나 많은 얼굴을 토해야
할까. 너무 많은 얼굴을
토해야 해서 눈가가 짓무르고 눈동자가 터져버릴지 모른다. p.101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 군인에게 납치를 당해, 직업소개소로부터 사기를 당해, 부모나 양부모가 팔아 넘겨서 위안소까지 오게 된 10여 명의 조선인 ‘위안부’들의 삶이란 너무도 끔찍했다. 열세 살 때 중국으로 끌려와 열다섯 살인 지금
위안소에서 아기를 갖게 된 일본군 위안부 소녀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눈을 부릅뜨고, 마음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부여 잡아야만 겨우 읽을 수
있었다. 김숨
작가는 2016년 출간된
장편소설 <한
명>에서 '위안부' 피해자가
세상에 한 명뿐인 상황을 가정해 이야기를 그려 냈었다.
당시 생존자는
40명.
2018년인 지금
<흐르는 편지>가 출간된 시점, 27명의 피해자가 생존해 있다. 이는 우리가 이 처참한 비극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저질러진 극단적이고 유례없는 성폭력'이라는 점에서 너무도 참담하고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이다. 어느 정도 미루어 짐작했던 고통보다 이 작품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실상이란 예상을 훨씬 넘어서는 무시무시한 지옥이었다.
특히나 죽음과 그리도 가까이 살고 있는 어린 소녀가 그 속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강력한 삶에의 의지가 나를 이 끔찍한 고통으로부터 외면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듯한 기분도 든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절대 이 부끄러운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현실과 너무도
먼 이야기라 전혀 실감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그들의 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