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해리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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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세상은 이렇다, 는 말은 무섭다. 어떤 노력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다 그렇고 그런 놈들이란 말도 무섭다. 결국 가진 자가 더 큰소리를 치며, 부당한 권력이 부정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세상이 당연하단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잔혹한 시대에 신앙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바로 이런 나쁜 상식에 대한 도전을 실천하는 힘이 아닐까. '원래 그렇다'는 그 말에 대한 도전 말이다.   -1 p.198

이야기는 안개 덮인 무진에서, 작은 방에 37일째 감금되어 잦고 심각한 구타와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한 남자로부터 시작한다. 특별할 것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지난 6년 통산 312번째, 최근 2년간 일어난 129번째의 비슷비슷한 죽음이었으니까. 대체 이곳 무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작품은 <높고 푸른 사다리> 이후 5년 만에 발표하는 공지영 작가의 신작이다. 그리고 올해로 등단 30년째인 공지영 작가의 열두 번째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 작품의 집필을 위해 약 5년간 사건의 현장 속에 뛰어들어 취재해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소설 <도가니>가 그랬듯. '야만의 현장'을 본 작가의 눈이 뜨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품이다.

한이나는 대장암 수술을 받기 위해 무진 가톨릭 대학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간호하기 위해 무진으로 내려온다. 이나의 엄마는 한때 서울에서도 초청 개인전을 열 정도로 잘나가는 화가였다. 여전히 그녀의 그림 값은 많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대신 팔리지 않았다. 인터넷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이나는 엄마와 함께하는 이 지상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휴가를 좋은 기억으로 채우고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죽을 사러 내려간 병원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최별라를 만나고, 백진우 신부 때문에 딸이 죽었다는 그녀의 억울한 사연을 듣게 되면서 이곳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졌음을 깨닫게 된다. 10년 넘게 기자로 일해왔기에, 그녀의 사연 속에 뭔가 도사리고 있음을 짐작한 것이다.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아온 백진우 신부를 따르던 최별라의 딸이 의문의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스토리 속에는, 어린 시절 이나의 친구였던 이해리가 있었다.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는 이해리가 백진우 신부의 애인이고 돈이 다 그리로 간다며, 이 근방에서 유명한 여자라는 것이다.

 

 

"저도 이십 년 만에 고향에 왔는데 제가 없는 동안 빌딩도 올라가고 카페들은 번쩍이고 백화점까지 생겨났지만...... 사람들의 말은 더 거칠어지고 고함은 더 커지고 폭력은 더 일상화한 것 같아요. 지옥으로 들어선 것 같아요. 헬로! 헬 무진! 정글 같아요.... 바닥의 사람들이 제일 먼저 희생되지요. 소망원 사람들처럼.... 그리고 아이들, 여자들, 약자들... 그러나 그들조차 서로 잡아먹고 있어요. 오늘 그 사람들처럼.... 무진에서는 늘 그랬어요. 인간이 인간을 두려워하게 만들어요.   -2 p.73

해리네 아버지는 온 동네가 다 아는 주정뱅이였고, 해리는 툭하면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으며 자랐다. 가출한 오빠는 아버지가 출타하면 그 틈을 타서 해리를 때리고 돈을 빼앗아가곤 했다. 유독 이나를 따랐던 해리는 고등학교 시절 서울로 올라간 이나에게 자신도 대학에 가고 싶다며, 부모님께 이야기해 등록금 좀 대달라고 하라고 부탁을 했고, 이나는 그 편지를 다시 반송해버렸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흘렀고, 다시 돌아온 무진에서 들려오는 해리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페미니스트의 감성을 건드리는 미혼모에 약자였고,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괴롭히고 무시하며 짓밟는 장애인들과 버려진 아이들의 어머니였으며, 온 국민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성추행의 피해자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 백신부에 이해리에게 피해를 당한 증언자들이 속속 이나에게 연결된다. 이해리에게 남편과 재산을 모조리 빼앗긴 장애인 복지시설 운동가, 죄 없이도 옥살이를 하고 여전히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인테리어 업자, 이해리와 백 신부의 농간으로 사업에 실패한 양식업자 등.. 이나의 기억 속에 있던 그녀와 이들이 지목하는 사람이 모두 한 사람이 맞는 것일까.

세상은 얼마나 악한가, 세상은 얼마나 뻔뻔한가. 이나가 파헤치는 백신부와 이해리의 비리와 가톨릭 무진 교구의 장애인 수용 시설인 소망원의 비극은 개인의 악이 사실은 집단의 악을 구성하거나 대표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악은 원래 지루하고 공허하다. 그리고 기껏해야 변명한다. 이거 원래 이러는 거야. 하지만 가끔은 세상의 모든 '원래 이미 그렇다고 정해진 것들'을 깨버릴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 작품은 원래 불행한 사람이 있는 세상에 대한, 나쁜 상식과 불행에 대한 도전이다. 당연히 선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비리와 부패, 욕망, 그리고 무엇보다 부정한 형태가 지속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보다 뿌리 깊은 악에 대해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은 그래서 시종일관 어둡다. 불의를 고발하려는 작가의 의도와 메세지는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남은 희망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만든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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