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 우리가 몰랐던 원자과학자들의 개인적 역사
로베르트 융크 지음, 이충호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두 사람은 태양 에너지가 가벼운 원자들의 파괴가 아니라 융합을 통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처음으로 내놓았다. 이 개념의 발전은 오늘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소폭탄 개발로 곧장 이어졌다.

물론 그 당시 원자를 연구하던 이 두 젊은 학생은 그 연구가 이처럼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p.60~61

올해 있었던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의 핵심의제는 북한의 비핵화였다. 그리고 미국 국무부는 남북이 9월 안에 남북정상회담을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한 것과 관련, 대북 문제에 대한 한미 간 공조를 강조하며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의 비핵화 문제 해결은 분리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연히 남북관계의 개선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문제 해결과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 이런 시점에 미국과 독일의 핵무기 개발과정을 기록한 최초의 간행물이었던 로베르트 융크의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이라는 책이 출간된 것은 의미 심장하다. 1956년 처음 출간될 당시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이 책은 1961년 한국어판으로 번역되었다가 절판된 후 이번에 재출간됐다. 이 책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에게 국제 사회가 핵무기를 바라보는 시각을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원자폭탄을 만들고 사용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과학자의 관점에서 원자폭탄의 탄생과 투하 과정까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하지만 어려운 과학 이론이나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이 난무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읽기에도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1945년 미국에서 첫 번째 원자폭탄 실험이 있었다. 산을 환하게 비춘 섬광과 함께 폭탄이 폭발하고, 거대한 화염 덩어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 오펜하이머는 이 순간 경전의 한 구절을 읊는다. '천 개의 태양의 빛이 하늘에서 일시에 폭발한다면, 그것은 전능한 자의 광채와 같으리라.'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융크는 원자폭탄의 역사에 대해 쓰면서, 이 문구를 이용해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이라고 제목을 지었다. 천 개의 태양보다도 밝은 에너지를 가졌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져서 수십만 명의 인명을 살상했으며, 냉전의 시대를 열면서 미국과 구 소련 사이의 군비경쟁을 낳음으로써 인류를 절멸시킬 위기로 까지 몰고 간 원자폭탄이란 존재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화창하고 따뜻한 어느 가을날 저녁, 두 사람은 어둠이 깔리고 나서 한참 지날 때까지 천천히 거닐면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주위에는 나무들이 높이 솟아 있었고, 산들거리는 바람은 노래를 부르며 새빨갛게 물든 가을 단풍을 잠재웠고, 졸졸거리며 흐르는 시냇물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인류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를 파괴하거나 위태롭게 할 권리가 있을까? 1939년에 바이스코프는 실라르드와 함께 긴급한 행동을 요구한 집단의 일원이었지만, 군인에게 무기를 주면 군인은 그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유혹을 억누르기 어렵다는 교훈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p.451

1920년대 유럽의 물리학자들은 서서히 베일을 벗던 원자와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 뮌헨과 괴팅겐의 젊은 물리학자들은 원자의 실체를 놓고 논쟁을 하고 이론을 만들었고, 이들의 이론과 실험에 의해서 원자는 숨겨놨던 강력한 힘을 조금씩 드러냈다. 이 책은 원자폭탄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과학자들의 개인적인 일상과 주변의 구체적인 정황들을 보여줌으로써 당시의 시대 배경과 원자폭탄의 탄생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로베르트 융크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미국과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핵무기 개발과 관련을 맺은 60명이 넘는 과학자들과 30명이 넘는 관계자들을 인터뷰했으며, 이를 통해 이들의 개인적 경험과 견해를 생생하게 담을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원자 폭탄은 무엇 때문에, 어떻게 개발되었는지, 악마의 일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어떤 시도를 했는지 등등의 의문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해소할 수 있다.

공포 정치를 자행하는 독재 정권 하에서 독일의 핵물리학자들이 양심의 목소리에 따라 원자폭탄 제조를 막으려고 시도한 반면, 두려워할 만한 강요를 전혀 받지 않은 민주주의 국가의 동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신무기 개발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사실은 역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로베르트 융크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발견에 대한 희열로 가득했던 그들의 순수한 열정이 원자폭탄 투하라는 결과에 이르기까지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무엇을 놓쳤는가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통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과학자들은 예전부터 국가들의 안녕을 증진시키는 대신에 국가들의 상호 파괴를 위한 신무기를 제공한다는 비난을 자주 받았다. 과연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사심 없이 한 발견을 인류가 다른 목적에 사용한 용도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것일까. 1차 세계 대전의 마지막 해인 1918년부터 동유럽 국가들이 소련을 중심으로 바르샤바 동맹 체제를 구축하면서 냉전이 심화되었던 1955년까지의 일을 그리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다. 최선의 선택이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그 아이러니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핵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에, 그 어느 나라보다도 핵무장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서 한번쯤 고민해봤다면, 핵무기 개발에 관한 놀라운 논픽션인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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