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걸 비포
JP 덜레이니 지음,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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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라뇨?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그는 나를 보며 순진무구한 아이 같은 미소를 짓는다. ", 그 사람이 말 안 했나요? 당신 전에 살았던 사람들 말이에요. 아무도 영원히 남지는 못했어요. 아시다시피, 그게 바로 핵심이죠."  p.212

 

에마는 얼마 전 집에서 강도를 당했다. 그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남자친구인 사이먼과 함께 새로운 집을 구하는 중이다. 제인은 얼마 전 상사와의 불륜으로 생긴 아이를 사산했다. 상담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고, 직장에는 사직서를 냈다. 아이를 위한 모든 것이 있었던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두 여자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집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원 폴게이트 스트리트! 보는 순간, 세상에! 라는 감탄사부터 나오는 그런 집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근사해서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집이다. 극도의 미니멀리즘으로 인테리어 잡지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집! 하지만 이 집에는건축가가 세입자를 승인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있다. 기다란 신청서 양식을 작성해 면접을 보고 통과해야만 입주가 가능하다. 그리고 에마와 제인은 그 면접을 통과한다. 각각 과거와 현재에 그들은 같은 집에 살게 된 것이다.

그 곳에는 초인종도, 문손잡이도, 우편함도 없다. 모든 건 앱 하나로 제어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 있는 디지털 키 혹은 디지털 팔찌로 비밀번호를 해제하고 문을 열 수 있다. 정원과 돌담 쪽으로 난 커다란 창문들에서는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벽과 바닥은 모두 같은 빛깔의 석재로 시공되어 있으며, 가구는 거의 없이 텅 비어 있다. 문도, 선반도, 사진도, 창틀도, 전기 콘센트도, 조명도, 심지어 전기 스위치조차 없다. 조명부터 샤워기 수온까지 집안 곳곳의 시설이 거주자의 취향을 반영해 자동으로 조절되어 그런 것들이 다 필요가 없는 집인 것이다. 물론 면접에 합격해서 이 집에서 살 수 있게 된 후에도 지켜야 할 규칙과 하지 말아야 할 금지사항들이 가득하다. 러그나 양탄자 금지, 장식품 금지, 책도 금지, 언제 어느 때고 바닥에 물건이 어질러져 있어서는 안 되고, 규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아야 한다. 각종 금지 조항이 가득한 이백여 개의 규칙을 지켜가며, 정리정돈부터 삶의 방식까지 관여하는 철저한 통제를 받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에서 살고 싶을 만큼 완벽한 공간인 것이다.

 

나는 변해야 한다. 상황을 명료하게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피해자가 아니라.

언젠가 캐럴이 그랬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고 자기 자신을 바꾸는 일조차 믿을 수 없을 만큼 힘든데도, 우리는 정작 남을 바꾸기 위해 가진 에너지를 모두 투자한다고.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나는 이 엿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한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될 각오가 선 것 같다.  p.356

굉장히 세련된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 내는 심리 스릴러이다. 이야기는 과거 원 폴게이트 스트리트에 살던 에마와 현재 이 집에 살고 있는 제인의 관점이 번갈아 가며 서술된다.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되는 구조는 그 반복 속에서 미묘하게 어긋나는 부분들로 인해 엄청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제인은 과거 이 집에 살았던 에마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고, 집주인 에드워드와 관계를 가지며 점점 더 과거의 죽음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다. 에마는 살해된 것일까. 혹은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사고였던 것일까. 죽은 에마를 위해 여전히 이 집에 들러 꽃을 두고 가는 남자는 말한다. 에드워드가먼저 그녀의 마음을 독으로 물들인 후 목숨을 빼앗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인은 과거 에마처럼 에드워드에게 점점 더 마음이 끌린다. 그리고 오래 전 죽은 에드워드의 아내와, 과거 에마와 자신이 매우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갈색 머리에 푸른 눈, 매우 창백한 피부, 게다가 서 있는 자세까지 그들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에드워드는 과거 에마를 데려갔던 곳에 지금의 제인을 데려가고, 같은 상황에서 같은 대사를 한다. 하지만 외모가 닮은 에마와 제인은 그의 같은 행동과 대사에 전혀 다른 반응과 행동을 보이고, 바로 그런 지점들이 독자로서 우리가 스릴과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제인의 삶에 계속 에마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결국 제인이 에마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쳐가는 과정 역시 극의 긴장감을 이끌어 주고 있다. 그렇게 탄탄한 구성과 독특한 설정, 그리고 우아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페이지마다 흐르는 묘하게 섹시한 분위기까지..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단 한 순간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어 준 이야기였다. 만약 완벽한 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것까지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완벽한 삶에 대한 갈망이 어떻게 극단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기가 막힌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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