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 뻔한 세상
엘란 마스타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달에 여행을 갈 수 있다거나, 쇼핑몰로 곧바로 텔레포트를 할 수 있다거나, 연예인의 자궁에서 커가는 태아를 지켜볼 수 있다거나, 혈장액 속에서 신체를 재생하는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기술이 실제로 가능한 세상에서 산다고 해서 모든 것을 알아낼 수는 없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도 우리 인간들은 여전히 똑같았다. 우리의 삶이 완전히 실패해 버렸을 때 어떻게 할지 몰라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건 똑같았다.   P.46~47

사람들이 흔히들 미래라는 것을 상상할 때 등장하는 것들. 하늘을 나는 자동차, 로봇 하녀, 음식 캡슐, 순간이동 장치, 제트팩, 호버보드, 무빙워크, 레이저건, 우주여행, 달 기지.. 그런 것들이 전부 다 이루어진 세계. 2016,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유토피아 사회가 이 작품의 배경이다. 이들이 놀라움으로 가득찬 첨단 기술 유토피아 파라다이스에 살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1965년 위대한 과학자 라이오넬 구트라이더가 발명한 무한 에너지 덕분이었다. 라이오넬 구트라이더는 그로 인해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할 뿐만 아니라 애정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51년 전, 혁명적인 방법으로 무한하고 강력하면서도 완벽하게 친환경적인 에너지 생산 기술을 발명해, 그야말로 '미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주인공 톰 배런은 천재 과학자인 아버지와 달리 지극히 평범했다. 빅터 배런 박사는 시간 여행 분야에 관한 독보적인 인물로, 곧 엄청난 시간 여행 프로젝트 실험이 계획되어 있었다. 아버지에게 헌신적이었던 어머니가 네 달 전에 뜻밖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그녀가 남긴 유언과 몇몇 상황들로 인해 톰은 아버지의 회사에 낙하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뛰어난 인재들만 모여 있는 시간 여행 프로젝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가 팀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는 프로젝트의 팀장인 페넬로페의 대역으로 각종 훈련을 받으면서 그녀를 몰래 짝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하게 되고, 그로 인해 아버지의 야심만만했던 시간 여행 프로젝트가 무기한 연기되고, 페넬로페가 자살하는 것을 눈 앞에서 보게 된다. 그는 완전히 충격을 받았고, 홧김에 시간 여행 장치를 타고 1965년 구트라이더 엔진의 초연 현장으로 무작정 향한다. 그리고  그가 잘못한 사소한 행동 하나로 인해 미래의 많은 것이 달라지게 된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무엇이 바뀌게 된 것일까.

 

사실상 가능하지도 않으며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역사가 바뀌었으니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역사를 바꿔놓았는데도 나는 태어났고 지금 멀쩡히 존재한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시간의 닻인 것이다. 내가 역사의 흐름을 일그러뜨렸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다. 내가 없어도 되는 역사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여기에 내가 존재하도록 만들어준 사건들은 그대로 일어나 평행 세계에서 내가 있던 시간에 나를 갖다 놓은 것이다.  P.202

이 작품은 영화 '왓 이프'의 시나리오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던 시나리오 작가 엘란 마스타이의 첫 번째 소설로, 이미 영화화가 결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만큼 매력적인 이야기였고, 페이지 터너로서의 뛰어난 몰입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실 SF소설에서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는 그다지 신선하지도, 매혹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에서 다루었던 평범한 소재 임에도 충분히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굉장히 자세하지만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지는 과학적인 정보들도 흥미로웠고, 시간 여행과 평행 세계를 이어주는 플롯 자체도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이야기 자체를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사용할 때 대부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로 가서 뭔가를 변화시켰을 때 그것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그러니까 살면서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과 달라져버린 미래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사소한 행동 하나로 인해 완벽하게 바뀌어진 미래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이 작품에서는 그것이 매우 극단적인 방식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원래 주인공이 살던 세계가 유토피아라면, 그가 시간 여행을 통해 달라지게 만든 미래는 끔찍한 디스토피아였던 것이다. 물론 주인공의 시선에서 판단하자면 말이다. 작가가 애초에 상상 속에 존재할 것 같은 미래의 시대를, 아주 먼 시점이 아니라 2016년으로 설정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2016년 현재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세계이지만, 이미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유토피아 사회에서 살던 주인공에게는 지금의 세계가 디스토피아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첫 페이지를 여는 주인공의 독백이 '나는 우리가 살 뻔한 세상에서 왔다'가 되는 것이다. 최근에 비슷한 소재를 가진 책들을 여러 권 읽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코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평범한 설정으로 시작했지만,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점점 더 어디로 튈 지 모르겠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고, '미래'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점도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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