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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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끝나고 있어요. 이 메시지는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천 년 후 미래의 세대로부터 거슬러 전달된 거예요. 세계가 끝나고 있고 우리는 종말을 막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박사님께 달려 있어요.”

......내가 조합해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였다.

, 세계가 끝나느냐는 말이 아니라, 라고 서둘러 덧붙여 말해야 했다.

왜 그게 중요하지?   P.10

죽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떨까. 태어나서 살다가 죽고, 또다시 사는 것이다. 같은 삶을 수천 번 다시 사는, 무한히 노회하고 무한히 현명한 존재들. 이야기는 주인공 해리 오거스트가 열한 번째 삶에서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시작된다. 일흔여덟의 해리는 환자복 차림으로 가슴에 심전도 모니터를 연결한 상태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때 일곱 살짜리 여자애가 등장해서는 말한다. 자신은 시간을 거슬러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데, 자신의 말을 박사님의 클럽들에 전해달라고.

"언제나 그래야 하듯이 세계는 끝나고 있어요. 하지만 세계의 종말이 더 빨라지고 있답니다."

 

그것은 끝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해리의 거듭되는 삶 속에서 제2차 지각 변동을 일으키게 된다. 소녀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는 채로 해리는 열한 번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이후 열두 번째 삶부터 그의 인생은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진짜 이야기는 그때부터 다시 시작된다. 세계 종말의 음모란 대체 무엇이며, 그 배후는 누구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생애에서 우리는 매번 죽음을 거치지만." 나는 말했다. "우리 주위의 세계는 변화하지 않습니다. 1917년에는 항상 혁명이 일어납니다. 1939년에는 항상 전쟁이 발발합니다. 케네디는 항상 암살당하고 기차는 언제나 제시간에 오지 않습니다. 생애를 거듭 살아가면서 우리가 관찰하는 한, 이것들은 상수로 존재하는 선형 역사의 사건들입니다. 유일한 변수는 우리입니다. 세계가 변화한다면 세계를 변화시키는 건 우리입니다."   P.199

해리 오거스트는 기차역 화장실에서 태어났다. 하녀였던 엄마는 그를 낳다 죽었고, 그녀를 강간한 주인의 가문은 해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관리인 부부에게 입양되었고, 청년들이 다 그랬듯 징집되어 2차 대전에 참전했고, 평범하게 살았다. 그리고 아내와 이혼하고 슬하에 자식도 없이 공적 연금에 의지해 살다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어느 종합병원에서 70세의 나이로 홀로 숨을 거둔다. 하지만 그는 1919년 새해 첫날 기차역 여자화장실에서 다시 태어난다. 성인의 의식을 온전히 간직한 채로 아이의 몸으로 돌아간 그는 혼란에 빠졌다가, 고뇌에 휩싸였고, 의혹과 절망에 빠져 일곱 살 나이에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여섯 달 만에 3층 창밖으로 몸을 던지는 데 성공한다. 세 번째 삶부터는 조금씩 달라진다. 그는 이제 자신에게 앞으로 닥쳐올 일들을 알았고, 대비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반복되는 인생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한 생을 거듭하게 된다. 그리고 세계의 종말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러 온 소녀와의 만남 이후로 뭔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휴고상, 네뷸러상과 함께 세계 3 SF문학상으로 불리는 존 캠벨상 최연소 수상작이다. 작가인 클레어 노스는 여러 필명으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해 왔다. 캐서린 웹이라는 본명으로 YA소설을, 케이트 그리핀이라는 필명으로 판타지 소설을, 클레어 노스라는 필명으로는 SF 소설을 발표하고 있다. 이미 청소년 판타지 소설로 두 번이나 카네기 메달 후보에 오르며 주목 받아온 작가이긴 하지만, 어린 나이에 비해 정말 왕성한 창작력을 지닌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이야기는 현대 세계사와 양자물리학에 관한 해박한 이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단 하나의 삶을 사는 대부분의 선형적 인간들과 이들처럼 여러 번 생을 거듭해 모든 것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인간들이 있을 때, 세대와 시대를 넘어 선형적으로 계속되는 역사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얼핏 전지전능해보이는 이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세계가 끝나가고 있는데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면, 누군가 나서서 뭔가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걸로 인해 선형적 시간성의 궤적이 달라지게 된다면, 그 결과는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여타의 타임루프 물에 비해서 철학적인 질문들을 묵직하게 제기하는 작품이라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럼에도 주인공의 반복되는 삶들을 통한 드라마도 지루하지 않았고, 여러 생각할 거리들도 던져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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