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 연대기 - 유인원에서 도시인까지, 몸과 문명의 진화 이야기
대니얼 리버먼 지음, 김명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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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이 발명되지 않는 한, 그리고 미지의 섬에서 살아남은 종을 발견하지 않는 한, 초기 호모 속 구성원들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는지 알려면 퍼즐을 맞추듯 그들이 남긴 화석과 유물을 연구해 그 결과를 현대 수렵채집인의 삶과 비교해봐야 한다. 이러한 재구성 과정에는 추측이 포함될 수밖에 없지만, 놀랍게도 그 추론은 상당히 믿을 만하다. 수렵채집 생활이 식물 채집, 동물 사냥, 긴밀한 협력, 식량 가공이라는 네 가지 기본 요소로 이루어진 하나의 종합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최초의 인간이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됐을까?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인간의 최대 수명이 무려 150세가 될 거라는 의견도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40년 전만 하더라도 평균수명이 그 절반 정도였고, 더 멀리 구석기 시대로 가면 당시 원시인의 수명은 18세였다고 한다. 하지만 늘어난 수명에 비해, 현대인들이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질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많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인간은 도대체 왜 병에 걸리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인 대니얼 리버먼은 우리 몸의 진화사를 이해하면 왜 우리의 몸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서, 우리가 그것 때문에 병에 걸리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병에 걸리는 이유를 인간의 진화를 통해 풀어낸다니 생각부터 참신했고, 궁금했다.

왜 우리는 쉽게 살이 찔까? 왜 우리는 때때로 음식을 먹다가 질식할까? 왜 우리 발바닥활은 평평해질까? 왜 우리는 허리가 아플까?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우리 몸을 만든 진화의 경이로운 여정을 되밟아보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감수를 맡은 최재천 교수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은 독자들에게, 아니 <사피엔스>를 읽으며 왠지 흡족하지 않았던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하라리와 리버먼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자신들의 책을 썼다. 두 작품 모두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하라리는 전쟁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이고, 리버먼은 인간의 진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이다. 바로 그 차이점 때문에 이 두 작품을 비교해서 읽는 재미도 있었다.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 중의 하나는 바로, 책이 책을 부르는 순간이 아닐까. 책을 읽다가 작가의 전작을 찾아 보거나, 유사한 주제를 다룬 다른 작가의 책을 찾아서 읽게 되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이 세계가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이 아니듯이, 우리 몸도 가능한 모든 몸 중에서 최선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몸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 몸을 즐기고 돌보고 보호해야 한다. 우리 몸의 과거는 더 적합한 자의 생존이라는 과정이 만들었지만, 그 몸의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안이한 낙관주의를 비판하는 볼테르의 풍자소설 <캉디드>의 말미에서 주인공은 평화를 되찾으며 이렇게 선언한다. "내 밭을 일구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거기에 덧붙여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몸을 일구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어떻게 두 발 동물이 되었는지, 직립 보행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인간의 몸이 점점 진화해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임신한 포유류가 태아와 태반, 체액의 증가로 인해 크게 늘어나는 하중을 견뎌야 하는데, 두 발로 걷게 되면서 네 발 동물과 달리 무게중심이 더 앞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런 추가 하중에 대처할 수 있도록 아래쪽 요추 만곡 부위에 쐐기꼴 척추뼈가 늘어났다는데, 실제로 그 부위의 척추뼈는 여성이 세 개고 남성이 두 개라고 한다.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란 이렇게 놀라운 것이다. 그리고 수렵 채집인의 생활과 현대인의 그것을 비교하면서 식생활이 어떻게 달라지게 되었는지, 그에 따른 인간 몸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 믐의 역사를 살펴보며, 우리가 어떻게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인류 종이 되었는지를 알아가는 시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우리의 몸에 문화와 생물학적 형질이 수십만 년간 상호작용함으로써 진화한 특징들이 가득하다는 것도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고 말이다.

지난 150년간 우리가 먹고 일하고 이동하는 방식, 질병과 싸우고 청결을 유지하는 방식, 심지어 잠자는 방식까지 송두리째 바뀌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몸의 진화적 설계와 문명 간의 부조화로 인해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놀라웠다. 당뇨병, 심장병, 골다공증, 매복사랑니, 평발, 암 등 현대인의 질병을 어떻게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지 새롭고 유용한 지식을 얻게 된 것도 흥미로웠고 말이다. 게다가 인류 진화사부터 문명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내용을 쉽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아 평소에 과학 교양서를 많이 읽는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수월했고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가 직면한 건강 문제가 일종의 진화적 산물로, 혹독한 환경 아래서 생존과 번식에 적합하게 진화한 우리 몸이 풍요롭고 안락한 현대 문명과 만나 벌어지는 부적응 때문이고, 이는 우리 몸의 진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충분히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몸과 문명, 건강과 질병에 대해 진화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진화의학이란 것이 이렇게 중요하고, 또 쉽고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의미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책 역시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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