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채의 집이 모여 하나의 건물을 이루는 아파트는 나의 감정과 연동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택은 마당에서 여러 가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과하지 않은 크기의
건물이기에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학교 건물은
보통 한 사람 몸 크기의 580배 정도 된다. 이런 건물은 너무 커서 우리 아이들이 정을 붙이기 어렵다.
이런 건물은 일종의
‘시설’로 느껴진다.
대부분의 인격 형성이 이루어지는 시기의 아이들이 이런 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점점 높아지는 집값과 청약당첨의 어려움 등으로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생의 가장 큰
목표는 아마도 내 집 마련이 아닐까 싶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수십 년 동안 월급을 아끼고 모아서 겨우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뭔가 허무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여생과 노후를 위해서는 집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디서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겠다는 유현준 교수의 이 책을 내가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알뜰신잡을 비롯해서 여러 매체에서 자주 보아왔지만 그의 저서를 읽으며 새삼 깨닫는다. 건축이라는 것을 이렇게나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니 놀랍다고 말이다. 사실
실생활과 너무도 밀접한 분야가 바로 건축과 공간인데,
전문적으로 들어가자면 또 이것만큼 어렵고, 복잡한 것이 없다. 저자의 책이 쉽고,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건축과 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거시적으로, 인문학적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이 실려 있지만, 시작부터 파격적이다. 그는 말한다. '한교 건축은 교도소'라고. 무슨
소리일까. 한국에서 담장이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을 꼽자면 바로 학교와 교도소가 있다.
두 곳 모두 운동장 하나에
4~5층짜리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창문 크기를 빼고는 공간 구성상의 차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세상에, 이런 공간에서 12년 동안 우리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가 집을 떠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회가 학교라는 공간임을 떠올려 볼 때 안타깝기 그지 없는 현실이다. 저자는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시도를 해 본 적이 있다며, 아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주자는 콘셉트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사례를 들려 준다. 그의 말처럼 정말 '스머프 마을 같은 학교'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 건물이 저층화되고 분절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 같은 일반인들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말이다. 언젠가는 이런 학교가 만들어지길
고대해본다.
도시는 유기체에 비유된다. 따라서 궁합이 안 맞는 요소들이 만나면 문제를 일으키고 잘 만나면 상승 효과를 얻게 되어 전체 도시에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대표적인 예가
도심 속 자연의 대명사인 뉴욕의 센트럴 파크와 고급 상권의 대명사인
5번가의 만남이다.
5번가는 센트럴 파크의 동측 면에 위치하고 있다. 공원과 접한 면에는 세계적인 미술관인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고 그 길은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고급 상권가로가 된다.
센트럴 파크와
5번가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하며 시너지 효과를 만들고 있다. 서울에도 이와 비슷한 두 개의 요소가
있다.
그 외에도 흥미로운 화두가 많다.
그는 왜 우리나라에는 창의적인 천재들이 자주 나오지 않을까를 건축가 입장에서 고민해 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국내의
일반적인 회사 형태인 고층형 사옥이 아니라
'밥상머리 사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밥상에 둘러앉아 마주 보며 밥을 먹는 식구가 더 돈독한 가족애를 갖고 있는
것처럼, 서로 바라볼 수 있는
대형 공간이 조직의 문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형 쇼핑몰에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는 이유, 힙합 가수가 후드 티를 입는
이유, 뉴요커가 좁은 집에
살아도 되는 이유, 사람
중심의 공간인 골목길을 지켜야 하는 이유 등...
실제 사례를 통해서 우리의 삶과 밀접한 건축에 대한 사유를 보여준다.
로마의 벽돌 이야기와 피라미드,
조선 시대 사람들의 헤어스타일과 권력, 그리스 민주 사회를 만든 극장의 구조를 비롯해 왜 정치 집회는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가, 현대인이 SNS를
많이 하는 이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건축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어떤 공간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어떤 공간이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가, 우리는 과연 이
도시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의 ‘생활’과 ‘건축’과 ‘도시’를 종횡
무진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질문들이다.
다채로운 시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의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우리가 사는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귀결되고 있으니 말이다.
과연 내가 살고 싶은 곳은 어떤
곳일까? 내 아이가 자라서
살게 되는 곳은 어떤 공간일까. 술술 너무도 쉽게 읽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는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