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 세계를 담은 한 권의 책이 있다면
김운하 지음 / 필로소픽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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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세상의 모든 책들이 다 있답니다.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어떤 분야의 것이건, 어떤 장르에 속하건 모두 찾을 수 있지요. 또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아직 쓰이지 않은 책들, 화재로 타버리거나 세월이 갉아먹어 썩어버린 책들, 그리고 책 속에 나오는 허구의 책들까지도 모두 찾을 수 있지요."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읽다가 너무 지루해서 던져 버린 책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전개에 짜증 나서 분노했던 책들도 만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책에서도 배울 점은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책을 써야만 했던 작가의 욕망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입장에서 평생 아무리 부지런히 책을 읽는다 해도, 읽고 싶은 책들을 전부 읽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신중하게 책을 고른다. 매일매일 책을 읽어도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고 죽을 수는 없다니 얼마나 슬픈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책을 고르고, 책과 만나고, 그 세계 속을 유영하는 중이다.

그래서 자칭 독서가, 혹은 애서가, 그리고 책중독자들을 비롯한 작가들이 쓴 독서, ,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은 거의 모두 다 읽어 본 편이다. 왜냐하면 평범한 일상 속의 인간관계에서는 나의 책에 대한 애정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문 편이니 말이다. 가끔은 나도 그 말도 안 되는 책에 대한 애정을 공감 받고 싶고, 이해 받고 싶고, 그리고 나보다 더한 애정을 표현하는 이들을 보며 그래도 나는 평범한 편이라고 위안받고 싶다. 이번에 만난 소설가 김운하의 이 작품은 저자의 표현대로 '책과 독서에 대한 애정고백서'이다. 독서의 재미를 발견하고는 자연스럽게 애서가가 되고, 책 중독자가 되었고, 심지어 희귀본 수집가로 나섰다가, 결국은 직접 글을 쓰는 작가가 된 저자의 이력은 그야말로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부러움을 가득 동반하게 한다. 책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직접 새로운 책을 창조할 수 있는 위치까지 이른다면,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결론이 아닐까.

 

 

보르헤스의 서재와 에코의 서재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이제는 마침내 확고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어느 날 불현듯 내가 책무덤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집이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라 책창고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로 인해 내 삶조차 책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울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내게는 하나의 거대한 부자유, 구속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책으로 만들어진 기가 막히게 매혹적인 표지 이미지처럼, 이 책 속에는 마치 꿈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저자는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 다락방에 올라가 커다란 종이 박스들 사이를 헤집다가 순간적으로 기우뚱하고 어디론가로 추락한다. 정신이 든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천장이 아주 넓고, 벽면에 온통 책이 가득 꽂혀 있는 서재에 있었다. 그리고 서가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말을 한다. 여기는 '당신이 늘 꿈꾸던 서재'라고. 당신이 원하고 찾기만 한다면 어떤 책이든 모두 찾을 수 있는 그런 곳이라고. 그러니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책이라도.'

누구나 한 번쯤 상상 속의 서재를 꿈꿔보지 않았을까. 나는 주로 소설 속 이야기에 등장하는 허구의 책들이 궁금한 적이 많았다. 예를 들어 이런 책들이다. 스티븐 킹의 <파인더스 키퍼스>에 등장하는 천재작가 로스스타인의 <러너, 전쟁에 나서다> 같은 책. 극중 로스스타인의 이 작품은 미국 문학사상 <앵무새 죽이기>, <호밀밭의 파수꾼>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묘사된다. 스티븐 킹이 이런 분위기의 작품을 실제로 써주시면 어떨까 작품을 읽는 내내 상상하는 것으로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조엘 디케르의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에 등장하는 두 소설가의 작품들도 궁금했다. 이야기 속에서는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 위대한 소설가로 극중 묘사되는 해리 쿼버트가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소녀의 유해와 함께 그의 대표작의 타자원고가 발견된다. 그 원고를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의 제자이자 미국 문단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마커스 골드먼이 스물여덟 살의 나이에 무려 이백만 부나 판 소설도 실제로 읽어보고 싶었고 말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인다. 김운하 작가는 상상 속의 저에서 어떤 서재 목록들을 써내려갔을까. 그리고 그 책들을 정말 만날 수 있었을까.

 

책중독자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책에 대한 애정 넘치는 에피소드들과, 지독한 애서가가 밝히는 '쾌락주의 독서법' 그리고 사랑하는 작가를 위해 기꺼이 스토커가 되고자 하는 독자들의 마음과 상상 속에서 마법의 타자기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세계에 이르기까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다 너무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독서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내지는 책이란 이런 것이다.는 식의 잘난 척이 없고,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책에 대한 지독한 애정을 표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독서와 책과 작가에 대해 사유하게 만드는 책이라 더욱 좋았던 것 같다. 나도 저자처럼 평생토록 오직 책만 읽다 죽을 수 있기를 갈망한다.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한번쯤 해 본 적이 있다면, 당장 이 책을 만나 보시길!

*'이 서평은 필로소픽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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