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래빗 전집 (양장 스페셜 에디션)
베아트릭스 포터 지음,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톰썸과 헝카멍카는 위층으로 올라가 식당을 들여다 보았어요. 그리고는 기뻐서 찍찍 탄성을 질렀지요! 식탁에는 아주 아주 먹음직스러운 근사한 식사가 차려져 있지 않겠어요! 철로 된 숟가락, 납으로 된 나이프와 포크, 그리고 인형 의자 2 -- 얼마나 근사한지!

-'못된 생쥐 두 마리 이야기' 중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류의 토끼 캐릭터들 중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토끼는 피터 래빗일 것이다. 베아트릭스 포터에 의해 그림동화 속 캐릭터로 탄생한 티퍼 래빗 이야기는 1902년 초판 출간 후 전 세계적으로 무려 2억부 이상이나 판매가 되었다. 피터 래빗과 숲 속 친구들이 엮어가는 소박하고도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은 전체 23편의 시리즈로 되어 있고, 이번에 만나게 된 전집에서는 본편에 더해 미출간작 4편까지 모두 수록되어 있다.

 

맥그레거 씨네 정원에 숨어들었다가 생각지 못한 모험을 하게 된 개구쟁이 아기 토끼 피터 래빗 이야기. 오래 전부터 읽어 왔고,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였는데, 오랜 만에 다시 읽어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무엇보다 수채화톤의 그림들이 너무 예뻐서,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랑 함께 읽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첫 번째 피터 래빗 이야기는 서두부터 무시무시하다. 엄마 토끼가 아기 토끼 네 마리에게 말한다. 들판이나 오솔길에서는 놀아도 되지만 맥그레거 아저씨네 정원에는 가면 안 된다고.

 

"아빠가 거기 갔다가 사고를 당했거든. 맥그레거 아저씨가 아빠를 파이로 만들어 버렸지 뭐니."

 

이 대사 옆에 그려져 있는 삽화는 바로 파이 요리가 담긴 그릇을 들고 있는 맥그레거 씨네 가족들의 모습. 어린 시절 피터 래빗 동화책을 읽을 때는 이런 장면에서도 그다지 무섭다고 느끼지 않았었는데, 많은 것을 경험하고 나서 어른이 되고 나니 이 짧은 대사 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구나 싶었다. 분명 토끼를 비롯해 숲 속 동물들이 옷도 차려 입고, 말도 하며 의인화되어 있는 동화 속 세계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인간에게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망쳐야 하는 동물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후에 진행되는 다른 이야기들 속에서도 동물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계속 바탕이 되고 있기 때문에, 포터의 동화가 착한 세계만 그리는 여타의 동화들과는 뚜렷한 차별점을 보이는 것이다.

 

상추를 너무 많이 먹으면 "졸음"이 온다고 하죠. 난 상추를 먹어도 졸린 적이 없어요. 하긴 난 토끼가 아니니까. 하지만 플롭시의 아기 토끼들은 상추를 먹으면 졸렸답니다!

-'플롭시의 아기 토끼들 이야기' 중에서

무엇보다 베아트릭스 포터의 그림책이 너무 좋은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모든 이야기들이 아름다운 전원을 배경으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녀가 시골에서 자라 다양한 동식물들을 관찰해 왔기도 하고, 자연애호가이자 평생 환경 보호에 헌신한 환경 운동가이기도 한 점이 농장과 지역 풍경이 고스란히 담긴 사랑스러운 삽화들을 그리게 한 배경일 것이다. 피터 래빗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한 것은 애초에 시작이 가정교사의 5살 배기 아들이 아팠을 때 위로해 주고자 썼던 그림 편지였는데, 단순하고 귀여운 동화이면서도 현실 세계를 반영하고 있어 어른을 위한 동화로도 손색이 없는 것 같다.

 

이번에 양장본으로 새로운 옷을 입은 <피터 래빗 전집> 스페셜 에디션은 적절히 큰 사이즈를 채택하여 그림들을 최대한 크고 예쁘게 담았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가 시작하기 전에 '이 이야기에 관하여'라고 해서 작품의 탄생 배경과 소개 글이 수록되어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덕분에 '벤저민 버니 이야기' '피터 래빗 이야기'와 내용이 이어지는 속편이고, 벤저민 버니는 실제로 포터가 집에서 길렀던 애완토끼의 이름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그외에도 이야기의 배경 그림을 포터가 언제 스케치해두었는지, 그녀가 특별한 애정을 가졌던 작품은 무엇인지, 처음 출간 당시의 제목과 달라진 작품은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한 사소하면서도 재미있는 내용들이 가득 담겨 있어 본편 이야기만큼이나 재미있다. 그리고 정식 출간된 적이 없는 미출간 작품 네 편은 기존 그녀의 화풍과 굉장히 분위기가 달라서, 더 다양한 화법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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