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평하게 흐르고 모든 걸 시들어가게 만든다.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늙어가긴 마찬가지이지만, 그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들은
'내가 정말 늙어가는구나'라는 생각에 두려워하기도 하고, 늙어 가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에 자신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에 낯설어 하기도
한다. 나이를 먹을 수록 더
성숙해지고 깊이를 더해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더이상 젊은 시절처럼 일하기를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여기 이 두 늙은
여인처럼 말이다.
"그래, 사람들은 우리에게 죽음을
선고했어! 그들은 우리가 너무
늙어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여기지. 우리 역시 지난날 열심히 일했고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잊어 버렸어! 그래서 지금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친구야.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고.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게 아니라 말이야."
알래스카 극지방 유목민들은 언제나 먹을 것을 찾아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그 해 겨울에는
맹추위가 닥쳐 위협적인 한기만 휘몰아칠 뿐 생명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아무리 애를 써도 많은 여자들과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었고, 그 중 몇 명은
기아로 인해 죽어갔다. 그위친
부족 안에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돌봐온 늙은 여자 둘이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불평을 해댔고, 자신들이 늙고 약하다는 것을
과시했다. 족장은 곧 닥칠
혹독한 날들에 대해, 이 겨울
동안 살아남기 위해 고민했고, 결국 나이든 사람들을 두고 가기로 결정한다.
두 늙은 여자 중에 무리 안에 딸과 손자가 있었던 칙디야크는 자신의 딸이 족장의 결정에 항의하지
않음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이윽고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의 커다란 대열이 천천히 멀어져 간다.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두 늙은 여자를 남겨두고.
살을 에는 맹추위가 닥친 알래스카,
그 땅에서 늙은 여자 단둘이 남겨져 스스로 삶을 꾸려가야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여든
살, 일흔 다섯 살이었던
그들은 아직 죽을 때가 되었을 정도는 아니었다.
여전히 걸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었음에도 사람들은 그들에게 죽음을 선고한 것이다. 모욕감과 분노에 휩싸인 칙디야크에게 친구가
말한다. 여기 앉아서
기다리기만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죽고 말테고,
사람들에게 우리의 무력함을 증명하게 될 거라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아니지 않냐고,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고 말이다.
"잘못된 건 아무것도 없어, 친구. 요컨대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어. 그저 이 땅이 과거에는
정말 살기 수월한 곳이었는데 이제는 날 원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아마 관절이 너무 아파서 이런 불평을 하게 되는 것 같아."
칙디야크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자인 벨마 월리스는 알래스카의 외딴 마을,
전통적인 아타바스칸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실제로 십여 년 동안 혼자 생활하면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사냥과 덫 놓기
기술을 익히며 살았다. 책
속에서 북극권 사람들의 생존 기술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는 건 바로 그녀가 자신의 부족에게서 배웠고, 그렇게 살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딸들에게 대대로 전해주던 알래스카 인디언의 전설적인 이야기,
바로 두 늙은 여인과 그들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써냈다. 이 작품은 젊은 이들의 호의와 보살핌으로 남은
생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보내려던 두 늙은 여인이 얼어붙은 호수를 걷고,
수없이 눈 위에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혹한의 기온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젊은 시절 배운 사냥 기술을 활용하고,
토끼털로 담요도 만들고,
옷가지들도 만들고 힘겨운 겨울을 버텨낸다. 특히나 아타바스칸족 토박이인 짐 그랜트의 삽화들이 두 노인과
동물들, 그리고 알래스카의
풍경들을 보여주며 더욱 이야기에 온도를 더해주고 있다.
냉장고에 넣어둔 과일이나 채소가
색이 변질되고 형태가 망가지는 걸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달콤하고 상쾌하던 것이 갈색 덩어리로 변해서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무엇으로 변해버리는
것이, 어쩌면 우리네 인간이
자연히 나이를 먹어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원한 젊음이란 없으니까.
언젠가 나도 남겨질 누군가를 걱정해야 할 만큼, 이제는 어느 날 갑자기 어떻게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나이라는 걸 스스로 알게 되는 그 순간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영혼, 육신이 견뎌낼 수 있는 한계는 시간이 갈수록 짧아지면서 느껴지는 노후된
육체. 나이가 든다는
것,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그렇게 지독하고도 슬픈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벨마 월리스는 노인이라서 당연히 할 수 없는 일이란 없다고, 삶에서 뭔가를 성취하는 데에는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노년의
성장소설'이라는 특별한 방식을
통해서 말이다.
나는 멋지게 늙는 것이 오래 전부터 꿈이었다.
그래서 젊음을 추억하지만 그것을 그리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에게 늙음이란 무언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 되기를,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성숙해지고 단단해지고 깊이 있어 지기를,
그리하여 십 년 전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포기하지 않고, 생에 맞서 싸우려는 의지를 가질 수 있기를 언제나
바래왔다. 이 작품 속 두
늙은 여인은 나에게 그 오래 전 나의 다짐을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이가 들어도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고, 뭔가 이루어낼 수 있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걸 시도해볼 수만
있다면, 젊음을 부러워할
필요도, 늙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주
특별한 알래스카 인디언의 이야기는 그렇게 뭉클했고,
따뜻했다.